당장 자금력은 충분하지만
치솟는 환율에 긴장감 고조
이어지는 정치 불안 '변수'
원·달러 1500원 넘을 수도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받아 둔 예금과 다른 금융기관에서 빌린 차입 등을 통해 확보해 둔 외화가 20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환율이 치솟으면서 금융권의 외화 유동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일단 자금력은 충분한 모습이다.
다만 이대로 정치적 불안이 길어지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마저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은행들도 외화 유동성 리스크에 보다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평균 잔액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이 조달한 외화 자금 총 209조962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 늘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은 59조3093억원으로, 국민은행은 54조2139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0%와 0.8%씩 외화 조달 자금이 줄었지만, 여전히 규모가 큰 편이었다. 반면 우리은행은 52조1469억원으로, 신한은행은 44조2928억원으로 각각 5.2%와 3.4%씩 해당 액수가 증가했다.
자금 조달 유형별로 보면 외화예수금이 122조3777억원으로 1.9% 늘었다. 외화차입금은 48조1606억원으로 4.0% 감소했다. 외화회사채는 31조7039억원으로, 외화콜머니는 4조8383억원으로 각각 6.8%와 11.6%씩 증가했다. 기타 외화도 2조8824억원으로 9.0% 늘었다.
금융권은 이같은 외화 유동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대통령 탄핵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불안한 건 환율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10원부터 1430원을 오르내리며 널뛰기 장세를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에는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
원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은행은 외화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또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 등이 늘면서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금융당국에도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그룹 회장들을 불러 자회사의 유동성과 건전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기업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 운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같은 날 내부적으로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시 이미 마련된 비상 대응 계획에 따라 즉각적 시장안정 조치를 실행하고, 외화자금 동향 등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금융사의 충분한 외화 유동성 확보를 지도하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문제는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국 혼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볼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정치적인 이슈가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한다면 원·달러 환율은 1500원까지 볼 수도 있다"며 "당국이 개입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상황이 진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은행권의 외화 유동성은 웬만한 리스크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금융 측면에서 예단하기 어려운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 급등에 따른 추가 대응책일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