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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옥죄는 규제-2] 신산업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공유경제, 규제에 발목 잡혀


입력 2019.10.01 06:00 수정 2019.09.30 17:29        김은경 기자

업계 반발에도 ‘택시제도 개편방안’ 밀어붙이는 정부

‘구산업’ 위해 ‘신산업’ 규제하는 포퓰리즘 정책 지적

업계 반발에도 ‘택시제도 개편방안’ 밀어붙이는 정부
‘구산업’ 위해 ‘신산업’ 규제하는 포퓰리즘 정책 지적


지난 7월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실에서 박순자 위원장과 여야 의원들이 제2차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카풀 출퇴근시간 허용과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택시·카풀과 관련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수정안) 등 25개의 법안을 의결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7월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실에서 박순자 위원장과 여야 의원들이 제2차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카풀 출퇴근시간 허용과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택시·카풀과 관련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수정안) 등 25개의 법안을 의결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의 입법화를 예정대로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스타트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택시 업계와 스타트업계 양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쟁점 사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모빌리티 혁신안 법제화를 밀어붙이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신사업 위축에 대한 우려도 끊이질 않고 있다. 가격 경쟁력, 편의성 등의 장점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신산업으로 떠오른 차량 공유가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발목이 잡힌 상태라는 지적이다.

‘우버’ ‘그랩’ 등 글로벌 플랫폼이 호시탐탐 국내 모빌리티 시장을 노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토종 스타트업의 신사업 추진을 적극 지원하기는커녕 ‘구산업’인 택시업계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신산업’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수익 일부 걷어가며 구체적인 징수 방식 없어

1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혁신성장 및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논의하는 실무기구 두 번째 회의를 열고 운송사업 면허 총량제 등을 담은 여객운수사업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모빌리티 개편안에는 택시에 대한 규제 완화와 플랫폼 운송 면허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 7월 국토부가 제시한 택시 개편안과 큰 틀에서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타다 운영사인 ‘VCNC’와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요구사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토부 개편안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은 ▲혁신형 ▲가맹형 ▲중개형 등 3가지 형태로 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가맹형과 중개형은 기존에 있는 사업 형태로, 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중점 논의 대상은 타다 등이 해당되는 혁신형이다. 새로운 형태의 운송 서비스를 제도권 안에 들이기 위해 마련된 사업유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플랫폼 기업의 운송사업을 허가하는 대신 운영 가능 대수를 정하기로 했다.

허가 총량은 ▲국토부 장관이 허가하고 ▲이용자 수요·택시 감차 추이·국민 편익 등을 고려해 정하고 ▲허가 대수 또는 운행 횟수 등에 따라 수익의 일부를 사회적 기여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개편안을 바탕으로 한 여객운수법 개정안 가안을 만든 상태다. 기존 여객운수법 내 운송가맹사업과 관련한 조항을 플랫폼 운송사업에 대한 내용으로 바꾸고, 총량이나 기여금은 세부적인 사안은 추후 논의를 통해 시행령으로 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한 기여금을 기존 택시 면허권 매입, 택시 종사자 복지 등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징수 방식조차 정해지지 않는 등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시’ 없는 모빌리티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박재욱 VCNC 대표는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모빌리티 개편안 실무논의 2차 회의 직후 페이스북에 “국토부가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 시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체적 방안을 모두 시행령으로 미룬 채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민 편익 중심으로 기존 택시 사업과 새 모빌리티 산업의 상생 모델을 만들겠다는 실무기구 논의가 단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스타트업계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국토부 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박 대표는 “심지어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에서는 오늘까지 2번의 실무회의에 모두 참석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당초 취지대로 국민 편익 중심으로 기존 택시 산업과 새 모빌리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마련하고, 그 실행 방안을 구체화한 조건에서 법령 개정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논의 이전 작년 10월 카카오가 내놓은 ‘카풀’이 택시 업계의 반발로 한 차례 좌초되면서 차량공유를 비롯한 모빌리티 혁신보다는 택시를 중심으로 사업 모델이 재편된 것이 스타트업계에 치명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작년 10월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 카풀’ 출시를 예고하며 카풀 드라이버 모집에 나섰다. 이에 택시 업계는 생존권을 문제 삼으며 대규모 집회를 열며 반대했고, 택시 기사들의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마저 이어졌다.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정부는 지난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통해 출퇴근 4시간 동안만 유상 카풀 영업을 허가한다고 했고, 카풀 서비스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전문가 “집단 이해를 국민 이해에 앞서서 생각한 정책”

결국 현 상황에서 차량 공유의 개념은 개인차량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타인에게 공유하는 등 ‘모빌리티 혁신’에서 멀어져 또 다른 택시 서비스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택시와 손을 잡지 않으면 차량 공유 사업이 불가능한 모습으로 바뀌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소규모 스타트업은 사업을 접어야 하는 실정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번 정부의 택시제도 개편방안 입법 추진은 스타트업 모빌리티 혁신을 가로막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앞으로 정부가 택시의 급여를 주겠다는 것인데, 택시기사들의 집단이해를 국민이나 소비자의 이해에 앞서서 생각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 간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지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이런 이해집단에 의해 모든 혁신을 거부하고 결국 4차 산업혁명을 하지 말자는 것의 한 상징으로까지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모빌리티 사업에 뛰어든 스타트업 중 카카오 등의 대기업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택시 면허를 사들여 사업을 추진하겠지만,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추진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결국 사업을 중단해야 할 위기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모빌리티는 택시뿐 아니라 음식 배달, 택배 등 국가 전체의 도심 물류비용에 관한 문제이고 생산 원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결국 이러한 혁신의 좌절은 국가 경쟁력, 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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