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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멈추면 큰일이고 공장 멈추면 예삿일인가


입력 2019.10.14 07:00 수정 2019.10.14 08:07        박영국 기자

필수공익사업에 한해서만 대체근로 허용

일반 공장은 대체근로 불가…산업 경쟁력 악화의 원흉

필수공익사업에 한해서만 대체근로 허용
일반 공장은 대체근로 불가…산업 경쟁력 악화의 원흉


KTX 차량이 경정비동에서 동시인양기로 들어올려지고 있다.ⓒ데일리안 이정윤 기자 KTX 차량이 경정비동에서 동시인양기로 들어올려지고 있다.ⓒ데일리안 이정윤 기자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지난 11일부터 72시간 파업에 들어가면서 코레일은 열차 안전 운행과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필수유지인력과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파업 기간에도 열차 운행률은 평시 대비 70%대를 유지했다. 차질이 빚어지긴 했지만 마비 사태는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 기간시설인 철도가 멈추면 전 국가적인 혼란이 발생하니 대체인력 투입을 통해 최대한 운영 차질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공장은 멈춰도 되는 걸까.

우리나라는 ‘파업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수시로 파업이 이뤄진다. 대표적인 강성 노조로 꼽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와 기아자동차지부는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과정에서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조정 신청 후 파업에 돌입하는 게 연례 행사화 됐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지난 10년간 430회가 넘는 파업을 겪었다. 올해 8년 만에 무분규 타결된 게 화제가 될 정도다.

이처럼 관행적인 파업이 이어지는 원인으로는 ‘대체근로 금지’가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법 43조를 통해 파업 시에도 대체 인력을 투입해 공장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사측은 대응할 방법이 없이 꼼짝 없이 공장을 멈추고 손실을 받아들여야 하니 노조는 툭하면 파업으로 사측을 압박하고, 사측은 누적되는 손실을 견디다 못해 노조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 구조다. 그 과정을 거쳐 연봉 9000만원을 넘는 고임금 사업장들이 탄생했다.

심지어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조합원들은 일하지 않는 기간 동안 임금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교섭 과정에서 또 다시 파업을 벌이겠다며 사측을 압박해 임금 손실분까지 받아내는 일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제도적으로 사측의 방어권을 빼앗아 놓고 노조에게는 쟁의조정 절차만 거치면 파업을 가능케 하는 막강한 공격권을 부여해 줬으니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협력 순위가 주요 141개국 중 130위(세계경제포럼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로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건설해 놓은 공장이 파업으로 멈추는 것은 해당 기업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우리 기업들만 파업 리스크로 발목이 잡혀서는 버틸 수 없다.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처럼 파업시 대체근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파업권과 영업권의 균형 차원에서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고 있고,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한 파업시에만 근로자의 복직 권리를 인정할 뿐이다. 일본도 노사관행으로 대체근로를 ‘한시적 대체’라는 전제 하에 전면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단기계약 및 파견 근로자로의 대체를 금지하고 있지만 신규채용을 통한 인력 대체 후 파업근로자 복귀시 대체근로자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 역시 파업불참 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에게 근무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대체근로는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필수공익사업에 한해서만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 기간 동안 코레일이 대체인력 투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이들이 철도가 멈추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일반 공장은 멈추건 말건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보다 산업의 역사가 한참 긴 선진국들에도 없는 기형적인 대체근로 금지 제도를 굳이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주요 산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을 방치하다 고사시키지 않으려면 노동조합법 43조라는 암 덩어리를 파내야 한다.

거대 노조가 움직이는 표심이 무섭다고 마냥 나 몰라라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역대 가장 노동계 친화적이라고 불리는 현 정부가 파장을 최소화하며 해 내기에 적격인 일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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