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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보다‘ 오래된 남의 것’ 선호하는 사람들


입력 2019.10.13 05:00 수정 2019.10.13 03:56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 70> 중고품이 중요한 취미 생활

검소한 소비 패턴은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한 고민

<알쓸신잡-스웨덴 70> 중고품이 중요한 취미 생활
검소한 소비 패턴은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한 고민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에스킬스투나(Eskilstuna)에 사는 교민 정미숙 씨(44세)에게는 취미가 있다. ‘옥션(Auktion) 찾아다니기’다. 미숙 씨가 종종 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옥션에서는 중고품을 거래한다. 거의 개인 소장품들이다. 구입보다는. 물건들을 둘러보고 남들의 경매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최근에는 기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스웨덴 중부 모라(Mora)라는 곳 옥션에 가서 근사한 그림 한 점을 단돈 100크로나(약 1만 3000원)에 구입했다. 스웨덴의 유명한 모라 출신의 화가 안데르스 소른의 모사화다.

안데르스 소른이나 칼 라르손 등의 스웨덴 화가를 좋아하는 미숙 씨는, 비록 진품은 아니지만 ‘땡 잡은 기분’이었다. 미숙 씨는 “옥션에 가서 이런 행운은 흔치 않지만, 또 이런 것 때문에 옥션을 즐기기도 한다”고 말한다.

미숙 씨의 이웃인 스웨덴인 소피아(48세)는 매주 일요일 스톡홀름 서쪽 멜라렌 호수에 있는 섬 스탈라홀멘(stallaholmen)에서 열리는 옥션에서 살다시피 한다. 직접 자신의 물건을 내놓기도 하고, 그곳에서 산 물건으로 자신의 작은 집을 온통 골동품으로 치장해 놓았다.

소피아에게는 함께 옥션을 찾아다니는 동아리도 있다. 이 동아리는 30대에서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의 남녀 10여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시간이 허락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옥션에 간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옥션은 매우 보편적인 취미 중 하나다. 스톡홀름 시내 곳곳에는 물론 근교나 지방에 있는 크고 작은 옥션은 늘 물건을 내놓기도 하고 구입하기도 하는 스웨덴 사람들로 북적인다. 스톡홀름에서 멀지 않은 베스테로스(Vesterås)라는 동네에서 열리는 야외 중고품 경매장 솔고덴(Solgården)은 스톡홀름에서부터 온 사람들로 늘 붐비는 유명한 옥션이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기도 하고,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쏠쏠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건 옥션 뿐 아니다. 벼룩시장도 그럴 수 있다. 벼룩시장은 스웨덴 뿐 아니라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고,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벼룩시장은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에게 훨씬 인기가 높다.

매주 일요일 시내 중심가인 회토리엣(Hötorget)이라는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비롯해, 토요일에 열리는 칼라플란(Karlaplan)의 벼룩시장과 스톡홀름 남쪽 지역인 쇠데르말름(Södermalm)의 스칸스툴(Skanstull) 벼룩시장은 스톡홀름 시민들이 매우 사랑하는 공간이다.

회토리엣의 벼룩시장이 중고품 거래업자들이 주로 오래된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유럽 전형의 벼룩시장이라면, 칼라플란 벼룩시장은 인근 동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좌판에 펼쳐놓고 판매한다. 또 스칸스툴 벼룩시장은 오래된 물건은 물론 판매자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구운 빵, 손수 만든 비누나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이 다른 유럽 사람들과 조금 다른 점은 이런 벼룩시장을 매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벼룩시장이 주로 주 1회 열리는데 반해 스웨덴에는 이른바 상설 벼룩시장이 즐비하게 많다.

대표적인 스웨덴의 상설 벼룩시장은 뮈로나(Myrorna)와 스톡홀름 스터드미슌Stockholm stadmission), 그리고 피엠위(PMU. Pingst Missionens Utvecklingsarbete)다.


구세군과 스웨덴 국교회(루터교), 핀란드 오순절 교회 등 종교단체에서 주로 운영하는 이들 벼룩시장 체인은 개인에게 물건을 기부 받아 이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국제 구호와 교육 등의 사업에 사용한다.

옥션이 됐든, 벼룩시장이 됐든 결국 남이 쓰던 물건을 재사용한다는 이들의 공통점은 스웨덴 사람들의 성격이나 소비 성향과도 밀접하다.

‘유럽에서 가장 검소하다’는 스웨덴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을 잘 가꾸고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을 즐기고, 저렴하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고,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서로 교환해서 다시 쓴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쓴다)’가 캠페인이 아닌 일상 속에서 생활화 된 사람들이다.

어지간한 부자라도 고가의 사치품 구입을 즐기지 않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고가구도 옥션이나 벼룩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저 아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즐거운 취미로 여기는 것이다.

또 한 두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결국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들은 염려한다. 완벽하게 폐기되는 물건이란 흔치 않다보니 기왕 만들어낸 물건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재사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성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것을 생산하고 단순한 소비에 그칠 경우 자신들은 물론 지구 환경이 병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는 그들인 것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인건비가 높은 스웨덴이다 보니 공산품 가격이 매우 비싼 것도 이유일 수 있다.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그들이라도 스웨덴의 공산품 가격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오래 쓰고 바꿔 쓰는 것이 일상화 됐는지도 모른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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