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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김형오, 黃에게 '퍼스트 펭귄' 돼 달라 할 수 있을까


입력 2020.01.20 04:00 수정 2020.01.20 07:39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김형오, 2016년 김무성 대표에게 '퍼스트 펭귄' 요구

金, 2020년 黃 대표에게 고언과 험지 출마 요구할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과 만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과 만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찬 바다에 가장 먼저 몸을 던져 수천 무리의 생명을 이끄는 '퍼스트 펭귄'의 자세가 필요하다. 무리를 이끌려면 뒤에서 호령하기보다 찬 바다에 먼저 뛰어드는 용기가 바로 이 시대의 리더십이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2016년 1월 31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20대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할 것을 주문했다. 4·13 총선을 두 달 반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 대표의 '권력자 발언' 등을 언급하며 고언(苦言)도 서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김무성 전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서 18대 국회까지 내리 5선을 했고, 김 전 대표의 경남중학교 4년 선배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할 때 살맛나는 정치가 탄생한다. 이른바 '험지 출마론'도 그런 거다"며 "안대희, 오세훈 씨를 험지로 보내려다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이 때 김 대표가 왜 '호랑이굴 출마 1호'를 자청하지 않았는지, 평소 김 대표 성격에 비추어 의아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고 그만둘 사람인지 대권을 염두에 둔 사람인지 진짜 헷갈렸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서구에, 김대중 전 평화민주당 총재가 당선이 불확실한 전국구 끝 번호를 자청해 결국 평민당이 제2당으로 도약하며 승리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자기를 던지고 버리고 죽일 때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자기희생을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나오면 국민이 뜨거운 박수갈채로 화답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정치 진리"라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은 21대 총선을 석 달여 앞둔 1월 17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황교안 대표로부터 공천과 관련된 전권을 받았다고 공언(公言)하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간섭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황 대표의 총선 출마와 관련해선 "황 대표는 제게 자신의 거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어볼 생각도 안했다"며 "공관위원장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대표니까 어떻게 하는 게 전략적으로 가장 효과적인지 여러 각도에서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 대한민국 만들기 국민대회'에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전격 선언하며 당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험지에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아직 황 대표는 '수도권 험지'가 어딘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종로에서 이 전 총리와 '빅 매치'를 벌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노무현·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1번지' 종로에서 승자가 될 경우 차기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지만, 패자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때문에 황 대표 입장에선 섣불리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해 이 전 총리와 맞붙어도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략적으로 어디에 출마하는 게 최선인지는 좀 더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당이 싫어서 떠났던 사람인데, (나라와 당이) 너무나 위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4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며 "앞으로 정치는 안할 것이고,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는 생각이다. 황 대표한테 '나를 믿지 못하면 위촉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당을 살리는 공정한 공천'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그러면서 '물갈이'를 넘어 대대적인 '판갈이'를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판갈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예고한 만큼,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흘러나오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천 과정에서 '그 잡음'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총선 승패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잡음 최소화'가 관건이다.


당의 우두머리에게 고언을 서슴지 않고 국민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진짜 험지'에 출마를 권고한다면, 김 위원장이 약속한 판갈이는 의외로 큰 잡음 없이 진행될 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은 당에서 공관위원 명단을 줬지만, 일절 안 받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발탁되면서 친이계(친이명박)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이 옅어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눈치 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 2016년 '김무성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퍼스트 펭귄 요구, 리더십 비판, 전략 부재 지적 등이 망라한 2020년 '황교안 대표에게 보내는 편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송오미 기자 (sfironman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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