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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장 규제] 기업 위에 서려는 국민연금…재계 "과도한 경영 간섭 우려"


입력 2020.01.26 06:00 수정 2020.01.26 07:35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수정안, 소송 등으로 자율적 경영활동 위축 우려

스튜어드십코드 강화 속 5% 이상 지분 기업 늘어 3월 주총 앞두고 불안감 '업'

국민연금공단이 기업과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 도심의 모습.ⓒ뉴시스 국민연금공단이 기업과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 도심의 모습.ⓒ뉴시스

국민연금공단이 기업과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 강화 움직임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주권 강화가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는 수준이 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의결, 공시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수정안이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활동 넘어 기업 경영간섭도 가능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27일 공시한 '국민연금 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통해 수탁자 책임 활동의 내용으로 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해 주주 제안뿐 아니라 소송 제기 등의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손해를 끼친 기업과 임원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수탁자 책임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투자기업이 이사 등의 고의·과실 등 위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봤는데도 책임추궁 등을 게을리하는 경우 승소 가능성, 소송의 효과 대비 비용, 주주가치 증대 여부 등을 따져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할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주와 채권자 등 투자자로서 투자기업이나 임직원 등(외부감사인 및 다른 투자자 포함)이 법령 및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국민 보험료로 조성한 노후자금의 운용을 책임진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기업과 기업인 입장에서는 자칫 과다 소송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당장 참여연대 등 시민노동사회단체들은 국민연금에 뇌물 및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각각 기금에 손해를 끼친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 등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 주주대표소송과 손해배상소송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앞서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해 말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 활동(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명시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은 횡령, 배임, 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기업대표 이사 등의 해임이나 정관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주주 제안을 할 수 있게 됐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수정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을 확대하게 되면 기업과 기업인들의 경영활동 위축으로 이어지면 국가 경제 활력 상실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과 지침 성격이긴 하지만 주주활동을 넘어선 경영간섭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국민연금공단
3월 주총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늠자..."과도한 개입 자제해야"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를 도입, 강화해 오고 있어 경영 간섭에 대한 재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자금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주주활동 등 수탁자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토록 하는 행동지침이다.


특히 지난 21일 ‘주식 등의 대량보고ㆍ공시의무’(5%룰)를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 활동이 한층 강화될 수 있는 길도 열린 상태다.


5%룰은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 등을 5%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목적과 변동사항을 상세 보고ㆍ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는 애초 상장사의 지분 집중 관련 정보를 시장에 공개해 증권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만들어진 제도로, 상장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도 있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5일 이내 상세보고 대상인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으로 ▲주주의 기본권리인 ‘배당’과 관련된 주주 활동 ▲단순한 의견 표명이나 대외적 의사 표시 ▲해임청구권 등 회사ㆍ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는 상법상 권한 행사 ▲공적 연기금 등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라 진행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 등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이에 국민연금이 향후 ‘상세보고’ 부담을 덜수 있게 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은 ‘장기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 가치가 추락했는데도 이를 개선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의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당장 오는 3월 주주총회부터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스튜어드십코드를 강조한 상황이라 국민연금은 오는 3월 주총에서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재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들고 있는 국내 상장사는 총 313개로 지난 2018년 말 기준 292개에서 21개 늘어난 상태다.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2196개)의 14.2%에 달한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98개사로 지난 2018년 말(80개)에 비해 18개 증가했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로서의 이익은 보호돼야 하지만 과도한 경영 간섭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주로서 의견과 비판은 청취해야 하고 정당한 주주권 행사는 인정해야 하지만 기업 경영 활동에 과도한 개입해 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은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개별 기업의 경영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할 것”이라며 “특히 정부의 입김이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더더욱 신중하게 운영해 기업들의 우려를 씻어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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