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불충분으로 '고배'
5년째 분쟁…3심 간다
IPO·지주사 전환 노력
교보생명이 재무적 투자자 측과의 풋옵션 분쟁 관련 2차전에서도 쓴 맛을 봤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증거 등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대법원에서 현명한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미뤄졌던 기업공개(IPO) 작업도 본격적으로 재개하고 법적 리스크도 깔끔히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3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1부가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임원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교보생명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증거 부족을 이유로 패소하게 됐다.
재판부는 "회계사의 가치 평가 업무에서 어떤 의견을 평가자와 의뢰자 중 누가 먼저 제안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계사의 전문 판단을 거쳤는지가 중요하다"며 "(가격 결정이) 안진의 전문가적 판단 없이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일방적 지시로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교보생명은 이번 재판 결과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안진이 공모해 산출한 풋옵션 행사 가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보생명은 "다수의 공모정황과 증거가 있었음에도 이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검찰의 상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대법원에서는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입해서라도 더욱 많은 증거를 취합해 명백한 공모 사실을 밝히겠다는 의미다.
이미 이들의 분쟁은 5년째 이어지며 긴 시간을 잡아먹었다. 교보생명과 어피너티의 악연은 2012년 시작됐다. 어피너티는 당시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였다. 당시 계약에는 교보생명이 3년 내 증권시장에 상장하지 않을 경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게 주식을 되팔수 있다는 내용의 풋옵션 조항이 포함됐다. 풋옵션이란 주식을 특정 가격에 되팔 권리를 말한다.
교보생명의 상장이 지연되자 2018년 어피너티는 회계법인 안진을 감정평가기관으로 선임해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때 산정된 가격이 40만9000원이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풋옵션 행사시 신 회장과 어피너티가 감정평가기관 1곳을 각각 선임해 30일 이내에 가치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양측이 제시한 풋옵션 가격 차이가 10% 미만일 경우에는 그 평균이 풋옵션 가격이 되고, 10% 이상일 경우에는 어피너티 측이 선정한 세 곳의 감정평가기관 가운데 신 회장이 한 곳을 선택해 그 가치평가 보고서를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러나 신 회장은 당시 이 계약이 자본시장법과 옵션부투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위배되고,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며 무효를 주장했다.
이에 어피너티도 2019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에 중재를 신청했고 ICC는 신 회장이 어피너티가 제시한 40만9000원이나 어떠한 가격에도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ICC는 신 회장이 풋옵션 조항을 이행했더라면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 회장이 패소 당사자임을 인정하고 어피너티의 중재비용 전부와 변호사 비용 50%를 부담하라고 판정했다.
이같은 반쪽짜리 승리 이후 신 회장은 어피너티가 풋옵션 행사 가격 부적절하게 높이기로 공모했다며 형사 고발했다. 어피너티가 안진에 이메일을 보내 가치평가방법 등의 수정을 지시했고, 필요한 자료 정보, 수시 산정한 결과값 등을 공유해 가격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은 법적 리스크 해소와 IPO를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장기간 분쟁으로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신 회장은 IPO를 통해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받아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재산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PO로 촉발된 문제를 IPO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사 전환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달 열리는 정기 이사회에서 금융지주사 전환 관련 안건을 상정하고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피너티 측의 법적분쟁 유발로 가장 객관적인 풋옵션 가격을 평가받을 수 있는 IPO 기회가 지연된 만큼 이제라도 주요 주주의 역할에 맞게 적극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며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금융지주사 전환, IPO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