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주의 대응 강조한 尹정부
'행동'에 앞서 '명분' 축적해야
'효력정지'서 '파기'까지
두루 검토할 필요성
"저쪽에서 난폭 운전한다고 안전벨트 풀겠다는 건가"
9·19 남북 군사합의 체결 당시 청와대 평화군비통제비서관이었던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군사합의 파기나 효력정지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을 이렇게 맞받았다.
정전 70년 가운데 군사합의 도입 이후 비무장지대(DMZ)에서 최장기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은 만큼, 원점 회귀 시 예기치 못한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과속, 역주행까지 일삼는 무면허 폭주족을 안전벨트 하나에 의지해 상대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라는 평가다.
예고 없는 북한의 난폭 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적·경광등·가드레일 등 다양한 대응 수단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군사합의 1조 '적대행위 금지'
"北 모든 대남도발, 합의 위반"
우선 군사합의 존속 여부를 판단하기 앞서 북한의 합의 위반 행위를 꼼꼼히 기록·공개하는 우리 정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다. 상호주의 대응을 예고한 정부가 실제 '행동'에 나서기 위해선 명분 축적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군은 '2022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 횟수를 17차례로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의 모든 대남 도발을 합의 위반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평가다. 군사합의 1조에 '상호 적대행위 금지'가 명시된 만큼, 이를 고리로 북한의 합의 위반 행위를 보다 폭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최근 통일연구원 주관 포럼에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안 내면 위반이듯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위반"이라며 "군사합의에는 적대행위 금지 조항이 있다. 북한의 모든 대남 도발은 적대행위 금지 조항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서울 핵과녁'을 운운하고 전술핵을 활용해 노골적 협박을 이어오고 있다며 "명백한 적대 행위다. 합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하나둘 세어 가며 누적되면 '어디로 간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측을 겨냥한 사격 및 포격 등만 합의 위반으로 간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엄격한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판문점선언, 군사합의 모법"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를
'세트'로 간주하자는 주장도
문 센터장은 군사합의의 '모법(母法)'으로 평가되는 4·27 판문점선언에 대한 북한의 위반 사례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라는 군사합의 공식명칭을 감안해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를 '세트'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문 센터장은 "군사합의가 독립적 합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판문점선언의 군사 분야 합의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합의가 군사합의다. 모법인 판문점선언을 북한이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합의도 흔들린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만큼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면 우리(남측)만 합의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판문점선언에 담긴 대북 확성기 중단도 무효화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 확성기 문제가 판문점선언에 명시돼 군사합의와 별개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만큼, 향후 운신 폭 확대를 위해 군사합의와 판문점선언의 연관성을 부각할 필요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 및 삐라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는 판문점선언 2조 1항에 담겨있다.
"효력정지, 명분·공감대 있어야"
"언제든 던져버릴 자세 갖춰야"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추가 위반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 대응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했던 효력정지 카드는 물론 파기 가능성까지 두루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은 "효력정지 시점은 분명한 명분과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7차) 핵실험이나 우리 영토에 대한 직접적 도발 등 고강도 도발 시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효력정지의 범위를 '일부 항목'에 국한할지, '전체 합의'에 적용할지 등 세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 전 대변인은 "효력정지는 안보상황 변화 시 회복 가능한 탄력성을 갖는다"며 "남측의 선제적 합의 파기를 도발 명분으로 삼으려는 북한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면서도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군사합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호 국방대 교수는 군사합의에 따라 '족쇄'가 채워진 해상 포사격, 정찰활동을 차례로 복원한 뒤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남북은 군사합의에 따라 완충수역에선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비행금지구역에선 공중정찰을 중지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북한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게 확성기"라며 "여러 가지 불필요한 도발이 있을 수 있다. (확성기 방송 재개는) 좀 더 명분을 쌓아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도 "북한의 현저한 위반이 또다시 발생할 경우 주저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실천 단계를 높여 궁극적으로 군사합의에서 빠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우리가 군사합의로 잃어버린 능력을 복원할 수 있는 액션플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군사합의는 '잠정적·한시적 거래'에 성격을 띠는 만큼 "언제든 던져버릴 수 있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국방부 단독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면서도 개인 의견을 전제로 "군사합의가 반드시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