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법 가드레일 핵심 안건, 3월 초안과 비슷
"예상 빗나가진 않았다"는 것이 업계 대체적 반응
중국 공장서는 '구형' 제품 생산 위주로 갈 것으로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 조치 여부 관심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 생산능력 범위를 최종 5%로 제한하면서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증설 기준 완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난 3월 초안보다 기준이 강화되지는 않았다는 점 등에서 업계 반응은 다소 엇갈리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중국 공장의 역할 전환이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모습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2일(현지시간)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규정 최종안을 공개했다. 규정안에는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 기준은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미만으로 생산 능력 확장이 허용된다. 28나노 이상 범용(레거시) 반도체는 10% 미만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첨단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후공정(패키징) 설비와 클린룸 같은 물리적 공간 확장 시에도 이러한 기준이 적용된다. '투자금액 10만 달러 상한액'의 초안 규정은 삭제돼 투자 제한은 일부 풀렸다.
지난 3월 가드레일 초안을 공개한 뒤 첨단 반도체 생산량 10% 확장 등 우리 쪽 기업들이 요구했던 부분은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상 현상 유지 수준의 운영을 해야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기술개발을 통해 집적도를 높이면 동일한 웨이퍼에서도 의미있는 수준의 증산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고로 10년간 5% 확장제한 규정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또한 초안에 반도체 시장의 계절적 변동을 고려해 웨이퍼 투입량 기준을 월 단위가 아닌 연 단위로 바뀐 점과 구축 중인 설비의 경우 가드레일 제한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점 등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상당수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과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에서 각각 D램 생산량의 40%와 낸드 생산량의 20%를 생산 중이다.
이처럼 중국 내 생산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미국 반도체법 가드레일 확정안이 나오자 업계에선 양사가 중국 공장 규모는 일단 유지하되 레거시(구형) 제품 위주로만 생산하고 첨단 제품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초 미국 반도체법이 등장하자마자, 국내 기업의 중국 EXIT(탈출) 전략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다만 사업장 규모를 줄이기 보단 구형 위주의 생산으로 대체돼야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아울러 국내 기업 입장에선 이달 중 발표 예정인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유예가 중요한 변수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수출 통제조치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는 1년간 수출 통제를 유예했다. 다음 달로 유예 기간은 끝난다. 한미 양국은 유예기간 연장을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 반입을 계속해서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전부터 흘러나왔다. 양 기업은 미국 상무부가 지정한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큼 향후에도 장비 반입에 큰 제재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최근 중국 화웨이가 내놓은 최신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가 생산된 칩이 탑재된 사실이 알려지며 미국 정부의 통제가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유예조치 연장을 단기간에 뒤집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아직은 우세하다.
가드레일 규정과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별도 조치다. 다만 국내 기업들에게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이미 미국 정부에 보조금 신청을 완료한 삼성전자가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중국 내 시설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게 되더라도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조치에 따라 장비 반입이 차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21일 '한미 첨단산업 기술협력 포럼'에 참석해 유예 기간 연장 여부와 관련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합법적인 사업은 계속하게 허용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며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들의 반도체 기업들을 불필요하게 옥죄고 싶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