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찾기’에서 걸어 나와 ‘싱글 인 서울’로 평행이동
털털한 솔로 연기 장인이 ‘로맨스 여왕’일 수 있는 이유
배우 임수정은 연애에 관심 없고 제 일에 열심인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영화 ‘김종욱 찾기’(감독 장유정, 제작 수필름, 배급 CJENM),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영화 ‘싱글 인 서울’(감독 박범수, 제작 디씨지플러스·명필름,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도 임수정은 솔로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느낌의 인물을 흐트러진 웨이브 긴 머리에 털털한 성격으로 실감 나게 연기하는 배우에게 웬 ‘멜로 퀸’이냐고? 그래서 로맨스의 여왕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연애에 무관심하고 소 닭 보듯 하던 그녀가 관객인 우리가 그토록 응원하던 대로 드디어 사랑에 빠지면 이보다 달콤하고 이보다 운명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다. 사랑과 연애 앞에 커다란 ‘장해물’이 있던 인물이 이를 극복하고 빠지는 연애야말로 ‘멜로의 정석’이다.
두 번째는, 연애 젬병일 것 같던 사람이 이미 시작된 사랑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부터는 누구보다 열심히 뜨겁게 사랑해서다. 그 뜨거움의 바탕에는 솔직함,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당당함이 있다. 외모만 털털한 게 아니고 연애를 대하는 태도도 털털한 그녀들을 배우 임수정은 현실감 나게 연기한다.
현실감, 가짜 같지 않고 진짜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은 연기의 지상 목표일 수 있다. 배우 임수정의 연기가 진짜처럼 보이는 바탕엔 딕션(정확한 발성과 발음) 좋고 표정 좋은, 작품과 장면에 딱 맞는 연기력이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크게 부풀려 스프레이로 고정하지 않은 그의 헤어스타일처럼 배우 임수정의 표현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다. 과하지 않은 표정, 과장되지 않는 말투, 힘주어 연기하지 않아서 더 주목되는 연기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모두를 합한 임수정의 표현들이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똘망똘망했다가 졸린 듯 아련하게 뜨는 눈, 독했다 얄미웠다 귀여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입꼬리, 기쁨이 담뿍 담겼다가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에 변함없이 섞여드는 순음(입술 부딪는 소리).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마치, 멀리 있는 상대를 줌으로 당겨 가까이, 상세히,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느낌인데. 멀리 대충 볼 때와 달리 그 사람 이목구비와 마음 생김새의 장점을 알게 돼 참으로 예뻐 보이는 발견인데. 배우 임수정은 자신을 ‘줌 인’(zoom in)으로 당겨보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발휘한다.
미스코리아 진보다 내 여자친구가 더 예뻐 보이는 일상의 기적, 그 표정 하나하나 피부 솜털의 떨림마저도 관찰하는 재미에 빠지는 일상의 행복을 화면 너머 배우 임수정이 일으킨다. 전형적 연기 표정과 이질감 넘치는 미모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본 적 있는 촉촉한 눈빛과 예쁜 미소, 친숙한 아름다움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기억과 추억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은데, 배우 임수정의 연기는 그렇게 내 인생의 어느 페이지에서 꺼내온 것처럼 ‘진짜’로 다가오니 대적할 자가 드물다.
최근 영화 ‘김종욱 찾기’(2010)와 ‘싱글 인 서울’(2023)을 OTT(Over The Top, 인터넷TV)에서 연달아 보았다. 흡사 저 화면에서 걸어 나와 이 화면으로 평행 이동한 듯 배우 임수정이 빚은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매력과 풋풋한 사랑은 한결같다. 임수정은 몇 살까지 멜로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