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기회 달라" 호소한 이재용·공세 강화한 檢…항소심 향방은(종합)


입력 2024.11.25 20:25 수정 2024.11.25 23:13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檢,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이재용에 항소심도 징역 5년·벌금 5억 구형

이재용 "국민 사랑 받는 삼성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 다 할 것" 호소

삼성 차분하고도 긴장된 분위기…재계 "추가 기소 사안 못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의혹'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최후 진술에서 삼성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무죄를 주장한 가운데 재판부가 2심 판결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 심리로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 참석했다. 재판은 오후 2시부터였지만 그는 1시간이나 이른 오후 1시 6분께 재판장에 도착했다. 재판은 장내 정리 등을 이유로 예상 시간 보다 늦은 2시 13분에 시작됐다. 재판은 검찰 구형, 변호인 최후변론에 이어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의 최후진술까지 6시간 가량 진행됐다.


먼저 검찰은 이날 자본 시장의 근간 훼손, 주주 기망 등을 주장하며 이 회장에게 1심 구형량과 같은 징역 5년·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 벌금 1억원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오후 7시 30분께 가진 최후 진술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그는 "올해 초 1심 판결을 선고 받을 때가 떠올랐다. 3년이 넘는 오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안도감 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삼성과 저에게 보내주신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접하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새 각오도 마음속 깊이 다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내는 물론 전세계 곳곳 여러 사업가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고 국내외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러 임직원들과 소통하며 삼성의 미래를 고민했다. 그리고 올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다시 이자리에 섰다. 그간 진행된 항소심 재판은 다시 한 번 제 자신과 회사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던 귀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유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여 많은 시간을 자책했다. 저는 기업가로서 회사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왔다. 이 사건 합병도 마찬가지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추진을 보고받고 두 회사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투자자를 속인다거나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 그럼에도 여러 오해를 받은 것은 저의 부족함과 불찰"이라며 "재판부가 보시기에 법의 엄격한 잣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잘못이 있다면 온전히 제가 감당할 몫"이라고 언급했다.


또 삼성을 이끌어온 전직 임원들도 거론하며 "평생 회사만을 위해 헌신해온 다른 피고인들은 선처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어려움도 삼성은 이겨낼 것이라고 한다. 많은 분들의 걱정과 응원을 접하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또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 저희가 맞이하는 현실은 그 어느 때 보다 녹록치 않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겠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면서 "부디 저의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6일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시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법인(SEMPHIL)을 찾아 MLCC 제품 생산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檢 "이재용 등, 韓 경제 정의와 자본시장 근간 훼손"

이 회장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부정·부정거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기소했다.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은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다.


이 회장 등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고 의심한다. 두 사건은 병합됐다.


검찰은 최종 의견진술에서 “피고인들은 이재용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 비대칭상황 악용했다”면서 “피고인들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 정의와 자본시장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는 것이 국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주주들을 기망했지만, 합병 찬성 결과는 국익 아닌 특정 개인 이익과 투자자 다수의 불이익이었다”면서 “이 사건 판결은 향후 기업구조 개편 및 회계처리 방향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회장이 5공장 건설 현장에서 존림 사장과 관계자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삼성
삼성, 검찰 구형에 긴장된 분위기…재계 "추가 기소 사안 못 찾은 것"

삼성은 이날 검찰 구형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전반적으로 차분한 가운데 결심공판을 지켜봤다.


삼성은 그간 검찰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고 반박해온터라 이번 구형량을 놓고 내부적으로 면밀히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졌으며, 삼성물산이 당시 3조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합병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삼성은 주장해왔다. 승계와 연관된 내용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1심 당시 구형한 것과 동일하게 2심을 구형한 것에 주목한다. 새로운 증거나 법리적 근거가 추가된 게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최종 의견진술 역시 1심 때와 크게 변한 게 없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찾아낸 게 있다면 구형을 더 늘렸을 텐데 동일 형량이라는 건 검찰이 내세울 게 1심 때와 다른 게 없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검찰 최종진술을 보면 원론적인 차원에서 흑백논리만을 앞세우고 있다”면서 “1심 때의 주장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검찰이 법적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항소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명예교수)는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서 “애초에 완패한 재판이었고, 항소를 할 게 아니었는데, 명분상 물러날 수 없다는 조직 논리가 검찰을 항소로 몰아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한 관계자도 “1심에서 감형도 아닌 무죄가 나왔다는 건 검찰로서는 상당한 굴욕일 것”이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검찰 조직의 특성상 떨어진 위신을 세우려 무리하게 항소에 나섰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삼성엔지니어링 도스보카스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지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
항소심 선고 내년 2월 3일…삼성 '경영시계' 제자리 찾을까

양측 변론이 마무리되면서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내년 2월 3일 오후 2시로 확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내년 2월 법관 인사 전 선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앞서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두 회사 합벼이 이 회장 승계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돼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DS) 사업부문은 안팎에서 조직 문화 혁신, 본질적 경쟁력 확보에 대한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삼성전자가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내놓은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의 반성문도 이같은 상황을 방증한다. 그는 삼성 위기 진단에 따른 책임을 통감하며 "근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 미래 준비, 조직문화 재건"을 약속했다.


본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래 대비를 위한 먹거리 발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고 세를 불린 노조는 회사를 연일 압박하면서 삼성은 말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대로라면은 한 순간에 1등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거세지고 있다.


이 회장이 2022년 10월 회장으로 취임한 뒤 '뉴삼성' 메시지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사업리스크에 매인 탓에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면 삼성은 혁신과 변화에 방점을 두고 '뉴삼성' 경영 전략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텔, TSMC 등 반도체 경쟁자들이 조 단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이 회장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만 이후 멈춘 대형 인수·합병(M&A) 시계가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되면 이 회장의 경영 활동은 또 다시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상고심까지 고려하면 2~3년 더 사법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미래 청사진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