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령관 맡았던 육군총장
"계엄, 상상하지 못해"
계엄법 등 숙지 못한 탓에
'명령 복종' 군 특성 극대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이렇다 할 제동을 걸지 못한 군 당국을 향해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강조해 온 우리 군이 계엄을 비현실적 상황으로 간주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평가다.
군 당국은 지난 여름께부터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계엄 선포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장관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선동"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계엄 이후인 지난 5일 개최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10월 계룡대에서 진행된 육군본부 대상 국정감사 당시 박 의원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게 직접 계엄 대비를 강조하기도 했다. 박 총장은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의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국감 당시 박 의원은 '군이 계엄에 나서서는 안 되고, 그것과 관련한 육군총장의 역할 있다'고 강조했지만, 박 총장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박 총장은 전날 개최된 국방위에서 국감 이후 계엄 관련 내용을 점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 상상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계엄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군 내부에 뚜렷했기에 주요 직위자들이 관련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계엄을 건의·기획·실행한 김용현 전 장관조차 지난 9월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계엄 가능성에 대해 "우리 군이 안 따를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 발언과 달리 우리 군, 특히 지휘부는 계엄 정국에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박 총장을 포함한 주요 지휘관들이 계엄법 등을 숙지하지 않은 터라 명령 복종으로 대표되는 군 조직 특성이 극대화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합동참모본부가 펴낸 '계엄실무편람'이 있긴 하지만, 관련 내용에 익숙한 인원은 합참 계엄과장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 총장조차 해당 편람에 대해선 "정확하게 늘 기억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례로 계엄실무편람 33페이지에는 '계엄사령관이 입법권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적시돼 있지만, 박 총장은 국회 및 정당 활동 금지를 골자로 하는 포고령 1호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박 총장은 포고령 내용에 대한 법무 검토가 마무리됐다는 김 전 장관의 '말'만 믿고 포고령에 서명했다며 "정상적으로 법적 절차가 진행됐다고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계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탓에 지휘관이 실제 계엄 상황에서 위법한 지시를 분별하지 못하는, 김 전 장관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계엄 교육기간 거의 없어
초급장교 때부터 교육해야"
무엇보다 45년 만에 불거진 계엄 정국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군 내부적으로 제도 보완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지낸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장교들이 (계엄에 대해) 교육받는 기간이 거의 없다"며 "어떤 과제로라도 반영해서 초급 장교 때부터 교육을 통해 흐름을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평시에도 이와 관련한 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계염군 국회 투입 지시한
특전·수방사령관 공개 사과
한편 군 내부에선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계엄군 국회 투입 등에 직접 관여한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은 공개적으로 사과 메시지까지 발신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박선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들께 다시 한번 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특히 작전에 투입된 우리 특전대원들한테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곽 사령관은 "우리 부하들은 분명히 제가 지시해서 들어갔다"며 "그 부분은 분명히 제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다. 투입된 우리 부하들에 대해선 책임을 (면해주시기 바란다)"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김 의원과 박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 모든 분께 현장에 출동했던 지휘관으로서 좀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곽 사령관과 이 사령관, 그리고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 계엄군 투입을 지시한 지휘관 3명에 대한 직무정지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