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일단 응한 뒤 법적 대응 했으면 국민 박수받았을 것
사과-결단은 늦고 격노는 너무나 빠른 게 그의 타이밍 문제
‘이 새끼들이’ 바이든-날리면 논란에 침묵, “파멸의 시작”
채상병, 의료, 김건희도 고집부리며 뭉개서 대형 이슈 돼
윤석열의 타이밍은 언제나 문제다. 완급이 늘 뒤바뀐다.
빨라야 할 때 너무 느리고, 느려야 할 때 너무 빠르다. 사과나 결단은 아예 없거나 지체돼 효과가 거의 없게 된다. 이미 여론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이후다. 사과 내용 또한 화끈하지도 솔직하지도 않다.
격노는 또 어떤가? 그 단어가 의미하듯 너무 급하게 화를 낸다. 이러면 반대 의견이나 조언이 나올 수가 없다. 그는 자기 말이 관철됐다고 생각이 되고 만족을 얻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강압적인 침묵이고 강제적인 동의다. 참모와 장관들이 이러는데, 언론과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계엄 전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이하로 내려갔던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40%가 넘어갔다고 본인과 국민의힘 당 의원, 지지자들이 고무돼 있다. 전통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이 계엄 초기 당혹감에서 벗어나고, 이재명과 민주당의 기고만장에 반감이 커지면서 결집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본질은 “윤석열도 나쁘지만, 이재명은 더 나쁘다”라는 이재명 비호감도가 낳은 기현상이다. 줄탄핵과 내란 타령,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 없는 세력의 집권에 대한 공포, 불확실성이 尹과 여당에 대한 호감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직무 정지가 돼 뭉개고 버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지지도 상승 요인이다. 리더로 안 나서니 인기가 올라가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그의 리더십 문제의 불편한 발로다.
돌이켜보면, 그의 리더십 균열은 바이든-날리면 욕설 논란 때 일찍이 싹을 보였다. 파멸의 시작이다. 취임 5개월이 채 안 됐을 무렵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한미 우호 관계에 악영향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비록 장관과 사적 대화였을지라도) 시정잡배처럼 상스러운 말을 뱉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정직성의 문제다. 해명이나 사과도 끝내 하지 않았다. “송구스럽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라고 털었으면 깨끗이 끝날 일이었다.
그러질 않아서 MBC 기자의 ‘슬리퍼 삿대질’ 해프닝이 일어나고 대통령 도어스테핑이 중단되었다. 그의 거의 유일한 장기(長技), 트레이드 마크를 스스로 없애 버린 것이다. 이것이 몰락의 서곡이었다.
채상병 사건도 그렇다. 대통령이 그 병사를 급류에 내몬 것도 아닌데, 대통령 사건이 되어 버렸다. 야당 프레임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격노’했고 그 격노를 수반한 수사 개입 사실에 입을 닫았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버티다 가래로도 못 막고 말았다.
이 두 가지 큰 사건으로 윤석열은 소통력과 정치력에서 커다란 결점을 노출했다. 간단하고도, 해답이 분명하게 나와 있는 사건들을, 본인이 정권을 흔들고 지지도를 추락시키는 쪽으로, 키우는 능력이 출중하다는 사실만 보여 주었다.
의료 대란은 타이밍과 솔직하지 못한 문제점에 고집불통이라는 치명적 성격을 선전한, 총선 대패와 그의 몰락을 채찍질한 윤석열 정부 최대 실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근거가 없는 의대 증원 2000명 숫자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TV 카메라 앞에서 53분간 장광설을 폈다.
이 대국민담화는 윤석열을 무너뜨린 어록 으뜸으로 꼽힐 것이다. 그는 정직하지도 않고 겸손하지도 않다. 의사들과 국민을 앞에 놓고 1시간 가까이 설교했다. 2000명 증원은 대통령과 총리만 없고 나머지는 그대로인 최상목 대행 정부에 의해 사실상 백지화되고 있다.
의료 대란을 비롯해 그가 자신의 이론과 고집을 수정 또는 철회할 기회는 무수히 많았다. 김건희 이슈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하지 않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비밀리에 몇몇 부하들과 계엄을 수 개월간 계획해 왔다. 그 참혹한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다. 졸지에 탄핵 소추가 되고 내란죄로 체포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는 공수처의 수사권과 영장의 합법성 문제를 따지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이 있다.
‘불법 체포’에 일단 묵묵히 응하는 것이었다. 한남동에서 벌어진 찬반 집회 아수라장, 공권력과 공권력 유혈 충돌 위기를 그는 며칠째 보고만 있었다. 그러고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 한 사람이라도 다쳐선 안 된다. 나라 위신도 생각하자. 내가 걸어 나가겠다.”
이렇게 말했으면 그의 마지막이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다수 국민들이 그를 큰 박수로 배웅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했을 것이다. 그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대신 경호처 조직이 와해해 경찰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밀고 들어오자 체포영장 집행을 받았다. 최악은 피했으나 너무 늦었다. 그가 끝까지 고치지 못한 타이밍 문제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