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1·2심 완패에도 불구 상고 검토
잃어버린 9년간 삼성 위상·경쟁력 추락
檢 무리한 기소 인정하고 전향적 결정해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1심과 항소심 모두 완패한 검찰이 상고 여부 검토에 들어갔다. 2015년 5월 양사 합병 발표 이후 2017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피의자 조사로 시작된 사법리스크가 햇수로만 9년째다. 무리한 수사 끝 남은 것은 상처 뿐인데도 검찰은 여전히 '이재용 유죄 만들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1·2심 공판에 100여차례 불려다니고 내부 자원도 사법리스크 방어에 쏠리는 동안 삼성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반도체 기술은 경쟁사에 뒤처졌고 빅테크와 경쟁할 신성장동력도 내놓지 못했다.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한 빅테크가 자체 AI칩, AI 단말기 등을 구상하며 빠르게 시장을 선도하는 동안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로 지난 9년을 하염없이 흘려보내야 했다.
반도체·스마트폰 등 삼성 핵심 사업부가 흔들리고 중장기 전망에도 먹구름이 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안팎에서는 '삼성의 문제'라며 기업 단일 문제로만 치부하려 든다. 총수 손발을 묶어둔 채 삼성이 제대로 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법리스크 없이 삼성이 초격차 기술 개발과 대형 M&A(인수합병)에 오롯이 매진했다면 삼성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리더십 공백' '사법리스크'로 위축됐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이지만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은 아직 삼성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항소심 판결(3일) 다음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재용 회장을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만남의 핵심은 AI였다. 중국발 딥시크 충격에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과 AI 반도체 제조·생산을 중심으로 한 AI 생태계에 삼성이 동참해달라는 취지였다. 뛰어난 제조역량과 자본력을 갖춘 삼성이 거센 AI 물결에 올라탈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으로서는 고난의 행군을 그치고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회장이 실형 판결을 받아 '총수 공백'으로 전개됐다면 글로벌 거물들과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뿐 아니라 한국 산업·경제 경쟁력 후퇴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만큼 이재용 회장이 갖는 대내외 위상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상고 여부를 판단해 보겠다며 형사상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대검찰청 예규인 형사상고심의위원회 운영 지침에 따르면 검사는 1·2심 모두 무죄 이후 상고를 제기하려면 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 상고심은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를 심리하지 않고 법리 오해만 따지는 '법률심'인만큼 검찰이 상고해도 이길 가능성이 작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당시 부당 합병·분식회계 혐의 수사를 주도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사과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2심 무죄에 대해 "결과적으로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간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음을 인정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자존심 회복을 위해 기계적 상고를 강행한다면 공권력 남용 뿐 아니라 또 다시 삼성의 잃어버린 9년을 연장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 10년간 삼성을 옭아맨 결과가 '이재용 무죄'라면 한국 경제를 후퇴시킨 장본인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달게 될 뿐 아니라 검찰 개혁 당위성까지 높여주게 된다.
검찰은 "검사의 항소 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고법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이제라도 삼성이 재도약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상고 포기와 함께 앞으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리한 수사가 없도록 스스로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