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귀화선수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34·전남체육회)가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쐈다.
압바꾸모바는 11일 중국 야부리 스키리조트에서 펼쳐진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바이애슬론 여자 7.5㎞ 스프린트 경기에서 가장 먼저 완주(22분45초4), 한국 선수단에 12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사격을 결합한 종목으로 '설원의 마라톤'이라고도 불린다.
경기 초반 2.4㎞까지 선두를 달린 압바꾸모바는 탕자린(중국)에게 선두를 내준 뒤 2~4위권으로 밀렸다. 5.0㎞ 통과 지점에서도 4위에 그쳤던 압바꾸모바는 6.0㎞에서 2위로 올라섰고, 뒷심을 발휘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01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지 9년 만에 이룬 쾌거다. 또 한국 바이애슬론의 종전 최고 성적(2003년 아오모리 대회 남자 계주 은메달)을 넘어선 성과다.
굴곡진 길을 따라 마침내 금메달에 도달했다.
러시아 청소년 대표였던 압바꾸모바는 2014년 그라나다 동계유니버시아드 은메달, 2015년 하계 세계선수권대회 혼성계주 금메달 등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선수층이 두꺼운 러시아에서 올림픽 출전은 매우 좁은 문이었다.
좌절에 빠졌을 때, 압바꾸모바에게 한국 바이애슬론이 손을 내밀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은 홈에서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적극적인 귀화 정책으로 지난 2016년 압바꾸모바를 품었다.
한국 대표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압바꾸모바는 여자 15㎞ 개인 경기에서 44분25초3의 기록으로 16위에 올랐다. 한국 바이애슬론 사상 여자 선수가 올림픽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압바꾸모바는 올림픽 폐막 후 돌연 한국을 떠났다. 의사 소통의 불편함과 러시아와 너무나도 다른 문화에서 외로움을 겪었던 압바꾸모바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한국을 이용만 하고 버렸다”는 거센 비판을 들었다.
압바꾸모바는 마음을 바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설원을 누볐다. 하지만 개인전 15㎞에서 사격에서의 실수로 73위(52분31초4)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시련 속에도 압바꾸모바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고, 하얼빈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다.
압바꾸모바가 불모지에서 일군 ‘금빛 성과’는 스포츠계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귀화’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국가대항전으로 인해 민족주의 색채가 남아있는 스포츠계에서 ‘순혈’을 고집하는 의견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탁구 전지희 -신유빈 사례 등에서 볼 수 있듯, 우수한 선수의 귀화는 한국 유망주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육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적극적인 귀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의 체육계 관계자들은 “바이애슬론 불모지인 한국에 압바꾸모바가 금메달을 안긴 사건만으로도 바이애슬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바이애슬론에 대한 큰 꿈을 품는 선수들이 늘어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압바꾸모바가 고은정, 정주미, 최윤아와 여자 계주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결실을 맺는다면 귀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