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에서 영감…디스플레이·우주·첨단 바이오 산업 활용 기대
아주대 연구팀이 반복적으로 구기거나 접었다 펴도 끄떡없는 전개형 전자장치를 개발했다. 짓밟히고 구겨져도 잘 살아남는 식물 질경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그동안 전개형 전자장치의 한계로 여겨져 왔던 전도성과 내구성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17일 아주대학교는 기계공학과 자연모사실험실 연구진이 고강도 섬유 케블라(Kevlar)를 활용해 전도성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강한 내구성과 뛰어난 인장강도를 갖춘 전개형 전자장치 소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전개형 전자장치'란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소에는 작게 구기거나 접어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펼쳐 사용할 수 있는 기기로, 최근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스플레이와 첨단 바이오·우주 산업 등에서 활용되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접히거나 구겨지는 부분에서의 전도성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과, 반복적으로 접었다 펴면서 발생하는 기계적 피로와 구조 변형 등 내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아주대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한 생명력으로 잘 알려진 식물 질경이(Plantago asiatica)의 잎맥 구조에서 영감을 얻었다. 질경이는 밟히고 넘어져도 살아나고, 쉽게 상처를 입지 않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질경이 잎맥은 강성이 매우 높고 질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주대 연구팀은 이러한 질경이의 형태와 특성에서 영감을 얻어, 고강도 섬유 케블라(Kevlar)를 새로운 전자복합소재에 적용했다.
연구팀은 고강도의 케블라(Kevlar) 섬유를 내장하기 위해 중립면 이론(Neutral Plane Theory)과 변형공학(eformation Engineering)을 기반으로 전자복합소재를 설계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개발한 새로운 소재가 75만회 이상의 반복적 구김 및 접힘과 자신의 무게 대비 6667배 이상의 하중을 견뎌내며 기계적·전기적 안정성을 유지함을 확인했다. 기존에 알려진 소재들과 비교할 때 15배 이상의 접힘 내성과 2배 이상의 인장강도를 보인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새로운 소재의 구겨지거나 접히는 면에서의 전도성도 일정하게 유지됨을 확인했다. 기존 전개형 전자장치의 경우, 구김이나 접힘이 생기는 부분에서 전도성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전도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면, 센서나 디스플레이 등의 용도로 보다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새로 개발한 소재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이 소재를 풍선 타입의 센서 내장 전개형 그리퍼(Gripper)에 적용해, 반복적 접힘과 펴짐에도 불구하고 온도와 압력, 근접도 등의 데이터를 처음 수준과 동일하게 측정하는 센서를 구현했다. 또한 고강도의 케블라(Kevlar) 섬유 삽입을 통해 강화된 소재가 높은 인장강도를 보이며, 이러한 특성이 물체를 안정적으로 잡는데 기여함을 확인했다.
연구를 주도한 한승용 교수는 "이번 성과가 접는 전자장치와 같이 공간 활용도가 높은 전개형 전자장치의 내구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겨서 휴대할 수 있는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분야나 인체 삽입형 바이오 센서, 우주항공산업 등 여러 분야에 쓰이는 전개형 구조물의 전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초연구지원과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 그리고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내용은 '구김과 장력에 대한 내피로성이 강화된 전개형 전자장치(Deployable Electronics with Enhanced Fatigue Resistance for Crumpling and Tension)'라는 제목으로 글로벌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1월 온라인 게재됐다. 기계공학과 한승용·강대식·고제성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고, 홍인식·노연욱 박사와 조중광 석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함께 했다.
아주대 기계공학과의 자연모사실험실(Multiscale Bio-inspired Technology Lab)은 자연계의 여러 생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창의적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거미 다리의 감지 기능을 모사한 의료용 센서 △소금쟁이를 비롯한 수면 생물의 움직임에서 착안한 수면 도약 로봇 △번데기 안의 나비 날개에서 영감을 얻은 스스로 주름을 펼 수 있는 디스플레이 장치 등이 자연모사실험실의 연구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