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우성·잠원 신반포 4차 등 유찰 잇달아
경기 침체 공사비 급등에 확실한 곳만 입찰
건설경기 악화로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장에서 수주 경쟁이 사라져가는 모양새다. 강남 3구 노른자 지역이나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유찰되는 사례가 반복되며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급등으로 건설사들이 보다 면밀한 분석과 전략을 바탕으로 사업장 옥석가리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와 송파 등 강남 3구 지역에서 진행된 1조원 대 규모의 재건축을 위한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단일 업체만 참여해 유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4일 총 공사비 1조7000억원 규모의 서울 송파구 잠실 우성 1·2·3차의 시공사 선정에는 GS건설만 입찰에 응하면서 결국 유찰됐다.
당초 삼성물산의 참여가 유력시되면서 지난 2015년 서초 무지개아파트(현 서초 그랑자이) 재건축 사업 이후 약 10년 만의 ‘리턴 매치’가 기대됐지만 무산됐다. 앞선 1차 입찰에서도 유찰되며 조합은 3.3㎡당 공사비를 기존 880만원(총 공사비 1조6198억원)에서 920만원(총 공사비 1조6934억원)으로 인상했지만 경쟁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삼성물산 측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잠실우성 재건축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 12만354㎡ 부지에 지하 4층~지상 49층, 공동주택 2680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대규모 건축 단지에 탄천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면 강남 삼성·대치동과 연결되는 등 입지가 좋아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경쟁 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할 수 있다. 잠실 우성의 경우, 지난해 9월 시공사 선정 당시 GS건설이 단독 참여해 유찰 된 후 공사비를 상향 하는 등 조건을 일부 수정한 후 재공고한 상태여서 같은 조건으로 한 차례 더 입찰을 진행해 유찰이 돼야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잠실 우성에 참여하지 않은 삼성물산은 최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신반포4차 재건축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신반포4차아파트재건축조합은 지난달 17일 삼성물산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통보 공문을 발송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 설명회에는 삼성물산을 비롯, 포스코이앤씨·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금호건설·진흥기업 등이 참여했으나 실제 공모에는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온 삼성물산만 입찰한 것이다.
총 공사비 1조300억원 규모인 신반포 4차는 한강변에 자리잡고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을 이용할 수 있는 트리플 역세권에 위치해 잠원동 ‘알짜배기’라고 평가받는 곳이다.
또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대림가락아파트 재건축도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참여해 수의계약으로 전환됐다. 대림가락 재건축사업 규모는 869가구로 사업비는 4544억원이다. 송파구 가락1차 현대 아파트도 1차 입찰 시 롯데건설만 제안서를 제출해 2차 입찰 공고를 낸 상태다.
지난해 송파구에서는 잠실우성4차(DL이앤씨), 가락삼익맨숀(현대건설), 삼환가락(GS건설)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단독 입찰에 따른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한강변의 서초구 신반포2차는 두 차례 유찰 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같은 상황은 수익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사업만 선별 수주하겠다는 건설업체들의 전략적 행보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년 간 인건비와 원자재비 급등으로 공사비가 치솟으면서 이같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 입찰을 할 경우 조합이 제시하는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만큼 단독 입찰보다 사업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공사비 상승에 건설사와 조합 간 공사비 인상을 두고 갈등을 겪는 곳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GS건설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 4지구 재건축 조합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공사비 증액 분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 대표 사례다.
반면 경쟁 입찰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곳들도 있다. 2조4000억원의 초대형 규모인 압구정 2구역 재건축에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2파전이 예고된다. 양사는 압구정 전담팀을 꾸려 대응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당 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에서 재건축 진행 속도가 가장 빨라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다. 양사는 오는 12일 개포주공 6·7단지 수주전에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사업성이 뛰어난 곳에 전략적으로 수주를 하는 분위기”라며 “경쟁입찰 구도가 형성되는 경우 막대한 홍보비는 물론 입찰에서 실패할 경우 이미지 타격 등의 리스크가 있는 만큼 사업 관리가 가능한 수준에서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수요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지만 건설사에서도 손해를 보면서 까지 수주를 하려고 하지 않아 유찰이 지속되는 것”이라며 “유찰되는 사업지는 공사비 단가를 조절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에 따라 양극화도 당분간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