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빅4’, 지난해 전년 대비 실적 악화
공급망 불확실성, 중국발 공급과잉, 수요 부진 영향
위기 극복 위해 정부 개입 통한 대대적 구조조정 필수
한국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이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 충격파와 중국의 약진,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부 주도의 정책 동력이 약화되면서 5대 제조업(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이 세계 선두권에서 밀려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국내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의 위기는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주>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복합적인 위기 속에 놓였다. 공급망 불확실성, 중국발 공급과잉, 범용 화학제품 수요 감소 등이 맞물리며 실적은 급락하고 있다. LG화학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큰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업계는 구조조정과 정부의 실질적 개입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탄핵정국으로 인해 정책 추진력이 약화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 조치가 지연될 위험에 처해 있다. 글로벌 경제 둔화와 친환경 규제 강화, 중국의 가격 경쟁력 강화가 악재로 작용하는 가운데, 석유화학업계의 생존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대응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공급망 불확실성 증가 ▲중국발 공급과잉 ▲범용 석화 수요 부진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석유화학 '빅4'는 지난해 모두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LG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3.8% 감소한 9168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롯데케미칼은 영업손실 8948억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연간 적자를 기록했으며 한화솔루션은 3002억원의 적자를 내며 적자 전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전년 대비 24% 줄어든 272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원재료 가격 변동성 확대, 홍해 분쟁으로 인한 운송비 상승, OPEC+의 감산에 따른 유가 상승, 미중 무역 전쟁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글로벌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도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가 주도한 환경 규제로 화학 범용제품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전세계 기초 화학 수요 증가율은 2020년 3.2%에서 2023년 3.0%로 둔화됐으며 2030년에는 2.6%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인해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주요 산업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플라스틱, 합성수지 등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도 급감한 점도 악재다.
가장 큰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진행되는 중국발 공급과잉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그간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여 온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생산능력 기준 세계 4위 석유화학 강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급률 100% 달성을 목표로 석유화학 설비를 대거 확충하면서, 국내 업계의 공장 가동률이 하락하고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업계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23년까지만 해도 39.8%에 달했으나 2030년 25.4%까지 하락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중국은 자체 생산량 확대를 통해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도 저가 제품을 대거 공급하며 한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공급과잉은 2028년까지 심화될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가격 등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중국이 순수출국으로 변한다면 중국에서 줄어든 감소분을 타 수출국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관적인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업계에서는 업황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며 지난해 말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3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방안이 빠지고 기업 자율에 맡기면서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필요한 시점에 탄핵 정국이 겹치면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정책 추진력이 약화되면서 정부가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보다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기업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사업 재편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산업 구조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적기라고 보고 있다.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기업의 사업 전환을 촉진하고 업계 재편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글로벌 경쟁 심화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석유화학 산업뿐만 아니라 한국 제조업 전반이 장기적인 경쟁력 저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