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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산 중턱, 청년들의 예술쉼터 ‘신촌문화발전소’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3.07 16:29 수정 2025.03.07 16:29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다시, 소극장으로⑲] 서울 서대문구 신촌문화발전소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신촌문화발전소

신촌은 오랫동안 젊음과 문화의 상징으로, 수많은 예술가와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신촌의 문화적 활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곳이 신촌문화발전소다. 당초 신촌문화발전소가 자리한 곳은 지리적 장단점을 모두 품고 있었다. 여러 대학이 밀집해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바람산 중턱,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목이라는 점에 있어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촌문화발전소는 이러한 불리한 입지 조건을 오히려 기회로 바꾸어 놓았다. 서울시는 2018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바람산 중턱 장비 보관창고로 활용되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시켰다.


덕분에 인적이 드문 이 골목은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고요함과 여유를 제공하고,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좁은 길목은 ‘숨겨진 아지트’와 같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소음과 방해를 차단해 예술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하면서 지리적 접근성도 높였다.


신촌문화발전소는 총 6개층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로비와 계단 통로 등에서 전시가 진행되고 2층 ‘스튜디오 창’은 창작활동을 기획하고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는 회의 및 발표 공간으로 활용된다. 3층과 4층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 바람’이, 지하 1층은 사무공간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 2층은 최대 50명까지 수용 가능한 소극장이 들어섰다.


단순히 불리한 입지 조건을 극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젊은 예술가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을 창출해낸 셈이다.


공연장 ⓒ신촌문화발전소
"청년예술인 넘어 지역민까지 향유하는 공간 되길"


현재 서대문구가 운영 중인 신촌문화발전소에서 김안나 프로그램매니저와 한보미 홍보 매니저가 각각 공연과 전시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곳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더 많은 지역민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2018년 개관했지만 여전히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신촌문화발전소를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공연예술인들은 당연히 ‘웰컴’이고, 그 외에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나, 준비생들 그리고 주민들까지 편하게 오셔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아직은 허들이 조금 있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오시는 분들은 계속 찾아주세요. 일종의 ‘단골’이죠. 앞으론 누구나 와서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김안나 매니저)


“이곳에 오기 전에도 서교동에서 청년예술 관련 직종에 있었어요. 신진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는 걸 느끼고 이곳에 왔어요. 신촌문화발전소는 지역 예술 활성화를 위한 공간인데, 아직 활용에 있어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어요. 사실 창작에 포커싱을 뒀던 것 같아요. 최대한 대학생들,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한보미 매니저)


연극 '청소하는 마음' ⓒ신촌문화발전소

‘청년문화예술 재생’이 신촌문화발전소의 탄생 배경이 된 만큼, 신촌문화발전소의 프로그램 대부분은 청년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공연한 연극 ‘청소하는 마음’이 대표적이다. 이 극은 청년 1인 가구에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돌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청년 세대의 고민을 담아 풀어냈다.


“극장에 올리는 작품들 대부분이 청년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담고 있어요. 저희가 방향성을 굳이 제시하진 않지만, 청년예술인들의 고민이나 창작 역량을 발휘하면 이 공연장과 더 큰 시너지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금 더 실험적이고, 안전하진 않지만 해봄직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극 ‘청소하는 마음’의 경우가 그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극입니다. 현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고민을 일상적 소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풀어내면서 공감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죠.” (김안나 매니저)


스튜디오 창 ⓒ신촌문화발전소

소극장은 물론 회의·발표 공간으로 활용되는 스튜디오 창, 전시 공간, 카페 바람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활용도도 고민 중이다.


“기존 창작 활동들 외에도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진행한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인 ‘예술로’를 이곳에서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민하는 회의를 진행했는데, 덕분에 예술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구나 싶은 확신을 얻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불특정다수가 신촌문화발전소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올해 추진해보려고 합니다.” (한보미 매니저)


신촌문화발전소가 설립된 이후 인근 지역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촌문화발전소는 퇴근할 때도 부분조명을 켜두고 퇴근길 지역민들의 안전귀가를 돕는 역할을 하고, 건물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야외 전시물이나 계단, 유리창 등의 자투리 공간들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문화발전소를 이용하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잠깐’의 예술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촌은 젊은 청년들의 문화가 활발하던 곳이었다가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지역으로 바뀌었잖아요. 문화발전소라는 공간이 문화예술이 이곳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문화 거점으로서 ‘회색’일 수 있는 곳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때까지…파이팅!” (한보미 매니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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