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I 등 창업투자 위해 200조원 규모 펀드 설립·운용하기로
美와 기술패권 다툼 속에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목표
알리바바·룽야오·텅쉰 등 민간 기업도 앞다퉈 AI투자에 나서
中, AI 분야 등에 앞으로 6년간 2000조원 이상 투자 전망 나와
중국이 ‘인공지능(AI) 굴기(崛起·우뚝 섬)’에 ‘모든 것을 건 듯한’ 모양새다. 미국의 강력한 대(對)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뚫고 개발해 세계를 충격 속에 빠뜨린 인공지능(AI)스타트업인 딥시크(DeepSeek·深度求索)의 저비용·고효율 AI를 발판 삼아, AI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중국 정부·민간기업들이 줄줄이 대규모 AI 투자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AI)과 양자 과학·기술, 수소배터리 등 첨단 기술산업 창업투자를 돕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1조 위안(약 199조 6000억원) 규모의 역대급 펀드를 설립·운용하기로 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중국중앙TV(CCTV) 등이 지난 6일 보도했다. 이같은 방침은 미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첨단기술 육성을 위해 대규모 투자펀드를 조성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거시경제정책 담당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정산제(鄭柵潔) 주임(장관)은 이날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경제부처 합동 기자회견에서 “신흥산업과 미래산업을 육성 및 확장할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 혁신기업을 우수하고, 강하고, 크게 만들기 위해 ‘국가창업투자유도펀드’를 설립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조 위안의 지방 자금과 사회자본을 동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펀드 존속 기간은 20년이다.
주요 투자 대상은 AI 등 첨단기술 분야 창업 초기 기업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전날 전국인대 정부 업무보고에 포함된 바이오 제조를 비롯해 양자기술, '체화(體化)지능‘(Embodied Intelligence·물리적 실체를 갖고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AI), 6세대 이동통신(6G) 등 미래산업도 이 기금의 투자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앞서 지난해 전국인대 정부업무보고서에 'AI+ 이니셔티브(주도권)'를 포함하면서 국가전략으로서 AI산업 육성과 글로벌 기술 경쟁력 강화의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올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지난해보다 10%가량 늘려 3조 9811억 위안으로 책정했다.
이 덕분에 중국은 향후 6년간 AI에 2000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천량(陳亮)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회장은 “중국 AI산업은 앞으로 6년간 10조 위안 이상을 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며 “이로써 중국 AI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까지 5조 6000억 위안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중국 민간기업들도 앞다퉈 AI사업 투자에 나서며 화답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마트폰 업체 룽야오(榮耀·honor)는 지난 2일 자사 기기를 중심으로 AI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향후 5년간 AI 분야에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리젠(李健) 룽야오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5년 동안 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AI 디바이스 생태계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룽야오는 2020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에서 분사한 스마트폰 제조사업체다. 미국 정부가 2019년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를 가하자 화웨이는 서브 브랜드였던 룽야오를 매각했다. 독립한 룽야오는 급성장하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주요 제조업체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2.3%에 그쳐 존재감이 여전히 미미하다. 블룸버그통신은 "딥시크의 추론 AI 모델이 등장한 이후 알리바바(阿里巴巴)와 텅쉰(騰訊·Tencent)과 같은 중국 주요 빅테크(기술대기업)들이 AI모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AI 기술 경쟁에 룽야오도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e커머스업체 알리바바는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3년간 3800억 위안을 투자한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第一財經)에 따르면 우융밍(吳泳銘)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4일 “향후 3년간 알리바바는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분야에 3800억 위안(약 75조 7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투자는 10년래 회사가 해당 분야에 투자한 액수를 크게 넘어설 뿐만 아니라 중국 민영기업이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투자하는 액수 중 가장 큰 규모다. 대규모 투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달 열린 마윈(馬雲) 창업자를 민영기업 심포지엄에 초대해 과거 행보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에 화답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2020년 10월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가 미운털이 박혀 수년 간 해외로 떠도는 등 은둔했으나 심포지엄에 참석을 계기로 ‘복권’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당시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 서밋’에서 “중국 지도부의 금융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 “규제 당국이 ‘전당포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혁신을 방해한다”고 비판 발언을 쏟아낸 후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이는 당 권위에 대한 중대 도전으로 여겨졌다. 괘씸죄로 찍혀 알리바바는 182억 2800만 위안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에 금융 자회사 마이(螞蟻·Ant)그룹의 기업공개마저 취소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정보통신(IT)업체인 텅쉰은 알리바바보다 투자에 신중한 모습이다. 하지만 AI모델의 폭발적 성장에 자극받아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230억 위안을 AI인프라 구축에 투입했으며 올해 투자 규모를 더 늘릴 방침이다.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모기업 즈제탸오둥(字節跳動·ByteDance)은 올해 AI 사업에 1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즈제탸오둥은 올해 중국 내 AI 칩 확보를 위해 55억 달러를 배정했다.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규모다. 또 68억 달러는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를 활용한 자체 AI 기초모델 훈련에 투자할 예정이다.
포털 바이두(百度)도 올 하반기 차세대 AI 모델을 출시한다는 목표 아래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기술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할 때는 투자를 멈출 수 없다”며 대규모 AI 투자를 약속했다. 바이두는 지난해 상반기 AI 부문에 42억 위안을 투자한 바 있다.
중국이 AI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17년 5월이다.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 레전드’ 커제(柯潔) 9단을 이기는 모습에 놀란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AI 선도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AI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며 세계를 바꿀 것이라는 확고한 비전이 있는 만큼 ‘기술 굴기’의 핵심으로 AI를 지목한 것이다. 2022년 빅테크가 아닌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은 뒤에는 민간 스타트업 육성에도 눈을 돌렸다.
중국의 AI 기술력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다.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와 베이징대(北京大)가 공동 개발한 2023년 글로벌 AI 혁신지수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AI활력도 순위에서도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세계 3대 AI 학회에 채택된 논문 중 등재 저자수가 많은 상위 10개 기관 목록에서도 중국은 미국(6건) 다음으로 많은 4건을 올렸다. 특허에선 이미 1위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14년부터 10년간 출원된 생성형 AI 관련 특허 5만 4000여건 가운데 중국이 출원한 특허가 3만 8210건으로 70%를 차지했다. AI 분야의 저변 역시 퍽 넓다. 중국에는 딥시크 외에도 5000개에 육박하는 AI 기업이 있다. 이 중 생성형 AI를 연구하는 기업만 700곳이 넘는다.
중국이 AI 등 첨단 산업에서 선두주자 지위를 갖게 된 것은 벤처 투자 생태계가 정교하게 구축된 것도 한몫했다. 실리콘밸리 방식을 철저히 모방한 뒤 미국과의 패권전쟁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정부가 주도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 산업을 키우는 중국 독자노선을 구축한 것이다.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내놓은 ‘중국 정부벤처캐피털(GVC)과 AI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GVC는 2000~2023년 9623개 AI기업에 1840억 달러를 투자했다. 반면 비슷한 기간(2001~2023년) 한국의 AI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분야 투자액은 19조 115억원에 그쳤다. 중국의 14분의 1 수준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