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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앙프앙 [조남대의 은퇴일기(68)]


입력 2025.03.11 14:00 수정 2025.03.11 14: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여행은 설렘과 기대를 품게 한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 속에 스며드는 것은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부모의 취향에 맞는 장소를 물색하고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딸네와 여행을 함께하자 마음이 푸근하다.


ⓒ므왕프왕 강가의 숙소 풍경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닿은 것은 12월 중순이었다. 장거리 비행의 피로가 밤을 지나며 조금 해소되었지만, 몸 구석구석에 여독이 남아 여행의 흔적이 느껴진다. 나이가 드니 신체 회복도 더딘 모양이다. 도착 다음 날 숙소가 강변에 있어 아침이면 스님이 보트를 타고 탁발하러 오는 멋진 곳이라 하여 기대를 품고 따라나섰다. 딸 부부와 손녀, 손자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여섯이다. 도시를 벗어나 방비엥까지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왕복 4차선 도로는 차량이 띄엄띄엄 오가고 휴게소는 문을 열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적막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우리의 휴게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남북한 합친 면적보다 넓지만, 구백만 명 남짓한 인구가 흩어져 살아가는 헐빈한 모습이 부럽게 느껴진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광활한 평야가 눈 앞에 펼쳐지고 드문드문 남겨진 공터는 시간을 멈춘 듯 쓸쓸하다.


ⓒ들판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가로운 풍경


40분 정도 달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꼬불꼬불한 산길이 이어진다. 한 시간쯤 비포장도로를 달리니 도로변으로 강이 흐르고 들판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산이 우뚝 서 있다. 이국적인 풍경에 눈이 절로 커진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나뭇잎들이 붉은 흙먼지를 묵직하게 안고 고개를 떨군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도 먼지 속에서 어렴풋하게 보이다가 한참을 지나야 또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던 중 뱀처럼 흐르는 남릭강 위에 떠 있는 리조트가 눈에 들어온다. 라오스의 최고의 낙원이라 불리고 지명도 생소한 ‘므앙프앙’이다. 단단한 밧줄로 강변에 묶인 20여 채가 한적한 강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로 유람선이 엔진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온갖 먹거리를 실은 보트가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문을 열면 발 밑으로 강이 그대로 이어진다. 더운 여름이라면 풍덩 뛰어들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가슴이 탁 트인다. 여독은 어디로 갔는지 몸은 날아갈 듯 상쾌하다.


ⓒ기다란 보트에 각종 생활물품을 싣고 강가 펜션을 오가며 판매하는 풍경


밤이 깊어지자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연인과 가족들이 모여 저마다의 시간 속에 잠긴다. 식사 후 데크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자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온갖 시름이 잊히고 마음은 고요한 평온 속에 젖어 든다. 딸네는 엄마 아빠를 모시기 위해 사전 답사까지 다녀왔단다. 이보다 더 큰 뿌듯함이 어디 있으랴. 주변이 캄캄해지자 밤하늘에는 오리온자리를 비롯하여 무수한 별들이 춤을 춘다. 옆집에서는 연인이 다정히 사진을 찍으며 어깨를 기댄 채 속삭인다. 신혼 때가 생각난다. 해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라 아내를 바라본다.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불꽃이 튀던 시절이었건만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내가 손주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 보인다.



ⓒ 밤이 깊어지자 가족끼리 모여 앉아 술을 마시거나 환담하며 즐기는 풍경


손주들은 빙그레 웃으며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겠다며 베개를 들고 우리 방으로 찾아든다. 네 명이 한 침대에 누워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깔깔깔 웃어본다. 애창곡인 ‘고래사냥’과 ‘임과 함께’를 부르고도 눈이 말똥말똥하여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창작과 각색해 들려주다 보니 스르르 눈을 감는다. 지난번에는 손자가 잠을 자다 아빠를 찾으며 다시 돌아가더니 이제 많이 자란 것 같아 대견하다. 밤이 깊어지자 강변의 공기가 점점 더 서늘해진다. 잠결에 추위를 느껴 속옷을 하나 더 껴입고 손주들에게 내복을 입혀준다. 어린 시절 한밤중에 걷어찬 이불을 살포시 덮어주던 부모님의 손길이 그립다. 벌써 내가 그때의 부모님 나이를 넘어 손주들을 챙겨주고 있다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손주들은 할부지의 이런 마음을 알기나 할까.


ⓒ새벽에 자욱한 안개가 피어올라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강 풍경


새벽이 오자 강변은 또 다른 신비로운 장면을 선사한다. 안개가 자욱하여 구름 속에 숨었다 드러나는 바위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변주를 거듭한다. 카메라는 쉼 없이 찰칵거린다. 스님들이 탁발하러 온다는 소식에 미리 주문한 시주 물품을 6시경에 가져다준다. 조금 지나자 강을 따라 모터보트를 탄 스님들의 모습이 서서히 안개 속에서 다가온다. 관광객들은 돗자리를 깔고 무릎을 꿇고 앉아 경건한 자세로 시주를 한다. 흔들림 없는 잔잔한 모습은 한 장의 고요한 기도화 같다. 찰밥과 과자, 빵 같은 물품을 스님마다 나누어 드린다. 시주가 끝나면 스님들은 복 내리는 독경을 하고 옆집으로 옮긴다. 장엄한 의식을 마친 후 다시 평온을 찾는 듯하다.


ⓒ새벽에 보트를 타고 탁발을 하는 스님과 시주하는 아내와 관광객들


비록 가톨릭 신자이지만 우리도 무릎 꿇고 앉아 정성스럽게 시주한 다음 스님으로부터 축복받았다. 풍성한 자비가 내려진 것 같아 뿌듯하다. 첫 번째 집부터 우리 숙소까지 스님이 다다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다른 스님이 탄 보트가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관광객이 첫 번째 보트에 시주를 마친 탓에 두 번째 스님들은 중간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늦게 온 스님들은 중간쯤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


이 모습을 보면서 불가의 스님들도 속세와 다름없이 경쟁을 외면할 수 없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시주의 순간 우리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영혼의 정화를 의식한다. 새벽 강가의 색다른 경험으로 마음속이 차분해지면서 뇌리에 깊게 각인될 것 같다.



ⓒ강변 펜션 테크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여행객


‘이방인’의 저자인 ‘알베르 카뮈’는 “여행은 단순히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열어주는 과정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므앙프앙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지나온 과정을 다시금 깨닫는다. 손주들의 웃음, 아내의 환한 미소, 딸네 부부의 세심한 배려가 풍성한 여행이었기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강가에서 만난 고요한 신비로움까지도 또 하나의 소중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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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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