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경력 대부분 충청도에서 보낸 정통 향판
지역 주요 반사회적 사건 맡아 엄벌 내려 주목
김명수 전 대법원장 지명·尹 대통령 임명해 취임
헌법재판관 취임 후 주요판결서 진보 성향 노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선고 만을 남겨두며 인용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선고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헌법재판관 8인 중 정정미 헌법재판관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물로 중도진보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정 재판관은 법원 내 진보 성향 연구회인 우리법연구회나 인권법연구회 출신도 아니고 정치적 성향을 외부에 드러내는 성격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나, 취임 후 판결을 살펴보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법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등 진보 성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1965년 부산 출생인 정 재판관은 부산 소재인 남성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4년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같은 연도에 사법연수원을 제25기로 수료했다.
정 재판관은 초임 판사 시절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력을 충청도에서 보낸 향판(지역 법관)이다. 그는 1996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판사로 임관해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과 전주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판사 등을 거쳤다.
2009년부터 2년 간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낸 이후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와 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장,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정 재판관은 각급 법원에서 여러 재판업무를 담당하며 출중한 법률지식과 뛰어난 재판능력을 인정 받아왔다. 대전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한 법관평가에서 2013년과 2019년 우수 법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국무총리 직속의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비상임위원을 맡기도 했는데, 활동 당시 권리구제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건들을 발굴하고 행정청 등 공적 기관들의 협력과 제도개선을 끌어내 주목 받았다.
정 재판관은 충청도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반사회적 사건들의 재판을 맡아 엄벌을 내리는 등 피해자 보호와 인권중심의 판결로 인상을 남겼다. 그는 2018년 대전지법 부장판사 시절 21세 남성이 19세 아내와 신혼여행 도중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아내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사해 살해한 일명 '신혼여행 니코틴 살인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아 피의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2년 대전고법 부장판사 시절엔 29세 남성이 동거녀의 생후 20개월 딸을 폭행 및 강간 살해 은닉한 일명 '대전 20개월 영아 강간 살해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원심인 징역 30년을 파기하고 피의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그는 의료수술 후 두 다리가 마비된 환자가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의료인에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군 복무 도중 고참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려 정신분열증이 발병했다는 원고를 공상군경으로 인정해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 재판관은 2023년 3월 이선애,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김형두 재판관과 함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았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적격'으로 채택돼 같은 해 4월17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는 물음에 "우리나라 주적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 재판관은 취임년도에 국보법상 찬양·고무죄 법조항이 일부 위헌이란 결정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이적단체 찬양행위 처벌규정이 위헌인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이적행위의 찬양·동조를 처벌하는 규정 및 이적표현물의 제작·반포를 처벌하는 규정은 합헌이나 이적표현물의 소지·취득을 처벌하는 규정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도 명확성 원칙 및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므로 위헌으로 판단했다.
작년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의 헌법소원을 인용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정부의 구호조치 미흡으로 인해 희생자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음의 확인을 청구하는 유가족들의 헌법소원 사건에서 심판청구가 적법하고 이유있다며 인용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정 재판관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보복 기소 혐의를 받는 검사의 탄핵도 인용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을 보복기소했다는 사유로 탄핵소추된 검사 안동완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검사 안동완의 직무상 법 위반이 중대하므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올 초에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탄핵을 인용하기도 했다. 재적위원이 2명인 상태에서 위원회 의결을 단행한 이 위원장의 행위가 중대한 법률상 정족수 위반이므로 그를 파면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스스로에 대한 기피의결에 참여한 것 역시 법률 위반이므로 이를 이유로도 파면할 수 있다는 별도의 보충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한편 정 재판관의 남편은 김병식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현직법관이다. 김 부장판사는 연수원 28기로 정 재판관의 3기수 후배다. 두 사람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 재판관은 공주시 선관위원장을 맡은 바 있고, 김 부장판사는 홍성군 선관위원장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