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비명계, 마찰 빚다 尹 탄핵에 합심
李 "탄핵 기각? 취미로 계엄 해도 된단 뜻"
野, 매일 '여의도→광화문' 도보행진 방침
헌재 선고 늦어질수록 李 대권가도 영향
비명(비이재명)계 대권 잠룡들과 파열음을 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손을 맞잡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예상치 못한 석방 결정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헌재를 향해서도 "국민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겠느냐"라며 우회적 압박을 가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에 당력을 총집중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비명계 잠룡으로 꼽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김경수 전 경남지사·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박용진 전 의원·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대에 설치된 천막농성장 모여 '국난극복을 위한 시국간담회'를 개최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통합 행보'에 나서던 이재명 대표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검찰과 당내 일부 의원들이 짜고 쳤다"고 말해 비명계의 성토가 이어진 뒤 첫 만남이다.
취재진과 유튜버들로 둘러싸인 천막 한가운데 앉은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의 석방) 사태로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하고 심지어 (헌재의 탄핵심판 기각으로 윤 대통령이) 귀환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봐 공포감도 느낀다"면서 "(비상계엄의 재선포) 상황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어떻게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겠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우리의 책임도 적지 않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는 것, 법률보다 높은 헌법이라는 기본질서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이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것이고 더 큰 위기가 오더라도 반드시 이겨내고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며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헌재를 향해 "국민적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어떻게 하겠는가. 적절하게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일부 국민의힘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탄핵이 기각돼 대통령이 다시 직무에 복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라며 "공식적으로 헌재의 이름으로 앞으로 대통령은 아무 이유도 없이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아무 때나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는 것 아니겠나.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기각 혹은 각하할 경우) 취미 활동 삼아 계엄령을 선포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것인데 가당키나 하겠는가"라고 헌재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간 이 대표와 '개헌' 및 '검찰 내통' 발언 논란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비명계 인사들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선고를 앞두고 이 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전향적 입장을 나타냈다.
김부겸 전 총리는 "헌재에서 정상적으로 헌정 질서가 회복될 수 있는 탄핵 결정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미루면 내전 상태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이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한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론 분열의 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는 것에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임종석 전 실장도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원칙과 윤리가 무너져 내렸는지 정말 참담한 마음이다. 법원과 검찰의 깊은 자성을 촉구한다"며 "하루 빨리 헌재가 국민의 기관임을 확인시켜 주고, 대한민국이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깊은 고민과 노력을 다해달라.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더 확실하게 국민들 속에 뿌리내리고, (이 대표가) 중심을 잡아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박용진 전 의원은 "한없이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국민 여러분을 가장 닮아 있는 민주당을 믿어달라"면서 "한 명의 당원 자격인 나도 이 자리에 모인 민주당의 지도자분들과 함께 내란 추종 세력들의 준동에 빼앗긴 봄을 다시 찾아오는 일에 앞장서겠다. 국민 여러분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김경수 전 지사도 "지금은 윤 대통령이 파면되느냐, 아니면 대한민국이 파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며 "(내란) 우두머리, 두목은 버젓이 나와서 활보하고 있다. 관저에서 또 다른 내란을 지휘하고 있다. 탄핵으로 반드시 이 내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탄핵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와 비명계 대권 잠룡들은 그간 임기단축·대통령 권한축소 개헌을 비롯한 '이재명 일극체제'를 지적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특히 이 대표가 유튜브 '매불쇼'에 나와 비명계와 검찰이 내통해 자신의 체포동의안을 가결시켰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통합은 쇼에 불과했다'는 자조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법원이 윤 대통령 석방을 결정하면서 정치권에 초비상이 걸리자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던 민주당은 검찰을 때리는 한편, 헌재를 향한 윤 대통령 파면 촉구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현재 국민들이 가지고 계신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흔들림 없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는 얘기가 있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오늘 간담회를 통해 그런 의지를 보여준 건 매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앞으로도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회의나 회동, 간담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이었고 참석자들도 힘을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여부 선고 결과가 늦어지는 만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는 오는 26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심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 상실형에 해당하는 유죄가 선고된다면 대선 가도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한편 민주당이 예고한 국회의원 도보 행진도 시작됐다. 민주당 소속 의원 100여명은 이날 오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촉구 민주당 국회의원 도보 행진 출정식'을 연 뒤 곧바로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 농성 캠프까지 약 8.7㎞ 거리의 구간을 행진했다. 도보 행진은 헌재가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할 때까지 매일 반복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