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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지키면 담합·어기면 불법' 상처만 남기고 떠나는 단통법[기자수첩-ICT]


입력 2025.03.13 11:09 수정 2025.03.13 12:04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공정성·형평성 취지 무색하게 소비자 이익 감소·규제 혼란 부작용만

규제 부작용으로 이통사 10년 고통…통신 발전 위한다면 건전한 시장 경쟁 유도해야

서울 시내에 위치한 통신사 대리점. ⓒ뉴시스

통신 시장의 지원금 과열경쟁을 막아 소비자들이 받는 차별을 없애겠다며 2014년 10월 도입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10년 9개월 만인 오는 7월 폐지된다.


단통법 도입 당시 취지는 단말기 지원금 공시를 의무화하고 유통점의 추가지원금 상한(공시지원금의 15% 이내)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이통사간 지원금 차별을 없애 고객들이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단통법은 도입 이후 10여년간 통신 시장 발전은 커녕 각종 부작용만 키웠다. 이통사 지원금 상한을 3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가격 경쟁이 축소됐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단통법 이전 보다 휴대전화를 더 비싸게 구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통신사와 단말 제조사가 제공하는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다보니 휴대전화 교체 기간이 길어지거나 통신사 약정 없이 구매하는 자급제폰 이용자가 늘었다.


기업들은 규제 혼란으로 이중고에 시달려야했다. 이통사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이 단통법을 근거로 이통사들의 번호이동, 장려금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서면 경고뿐 아니라 수십 차례의 제재를 통해 과징금 및 영업정지 처분을 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방통위로부터 이통사들이 부과받은 과징금 규모는 1500억원, 영업정지 제재 횟수는 32회로 추산된다. 이통사 간 번호이동 실적 공유도 방통위의 제재 조치에 따라 이때 도입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이 방통위 규제를 따른 행위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이것이 담합'이라며 이들 3사에 총 1140억원의 과징금을 때렸다.


이통사들이 여태 수천억원의 과징금 등 강력한 방통위 제재를 받으면서 단통법을 준수한 것이 공정거래법(거래제한) 위반이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LG유플러스가 공식 입장을 통해 "지금까지 당사는 방통위 규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행중이던 단통법에 의거해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단통법을 지키고 방통위의 규제를 따랐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담합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을까.


'법 지키면 담합(공정위), 어기면 불법(방통위)'이라는 오가가락 정부 부처 규제에 이통사들은 과징금만 이중으로 떼일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이통사 잡겠다고 행정력을 낭비했고 기업은 규제 리스크(소송·과징금) 부담에 둘러싸여 신성장동력인 AI(인공지능) 투자에 집중할 여력을 잃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금도 통신사를 통해 휴대전화를 사든, 자급제폰을 사든 단통법 이전 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그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규제의 역설'이다.


시장의 각종 뭇매 속 단통법은 '소비자 이익 감소, 부처간 규제 충돌, 행정력 낭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10여년 만에야 완전 폐지된다. 지원금 공시 의무와 지원금 상환 규제가 사라지며 지원금을 받지 않는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요금할인 혜택인 선택약정할인 제도는 유지된다.


그렇다고 이통사들이 10년 전처럼 대대적인 할인 정책을 내세울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은 본업인 이동통신 사업 비중을 줄이고 AI, 데이터센터 등 신성장동력에 힘을 쏟으려 하고 있어서다. 과거처럼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지원금을 풀 상황이 아닌데다, 또 다른 빌미로 규제 기관의 칼날을 받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출혈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다.


상처만 남기고 떠나는 단통법 사례를 보며 과도한 정부 개입이 시장에 어떤 악영향을 남기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시장의 균형을 위한 정부의 지침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을 정도로 거세게 작용한다면 부작용이 일 수 밖에 없다. 그게 지난 10년이었다. 통신 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질서 있는 시장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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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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