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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술, 그리고 영화…취향을 나누는 사랑방 ‘주책필름’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3.22 08:56 수정 2025.03.22 08:57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책방지기의 이야기⑳] 서울 봉천동 주책필름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영화와 책, 그리고 술이 있는 서점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주책필름은 서점명 그대로 ‘술’과 ‘책’, 그리고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서점이다. 영화를 전공한 여사장 최소영 대표와 영화 현장에서 일했던 남사장 신성일 대표, 두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두 사람의 ‘취향’으로 채운 공간이다.


ⓒ주책필름

두 부부는 지난 2023년 7월 주책필름의 문을 열었으며, 이후 봉천동에 위치한 한 파티룸을 인수해 극장 작당모의로 탈바꿈시켰다. 여사장 최소영 대표는 서점을, 남사장 신성일 대표는 극장을 맡아 운영하며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서점 입구에서부터 만날 수 있는 각종 영화 포스터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비디오 플레이어까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저작권 문제로 재생은 해두지 않지만, 비디오 플레이어 재생이 가능한 옛날 TV와 추억의 명작 비디오들도 서점 한 편에 전시돼 있다. 영화 관련 책을 바탕으로 연극, 문학 등 다양한 책과 주책필름만의 ‘레트로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이유다.


“의도한 인테리어는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서점을 채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이 됐다. 비디오 플레이어도 집에 있던 것들을 가지고 왔다. 소품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중고 비디오를 사기도 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온 것들도 많다. 얼마 전 한 어린 손님이 비디오 플레이어를 보고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해 웃었던 기억이 있다.”(최소영)


연기, 연출 또는 영화감독의 저서 등 영화 관련 책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연극, 문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여기에 술을 좋아하는 손님들까지. 주책필름에는 새벽까지 술과 책, 그리고 영화를 함께 즐기는 ‘취향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봉천동의 ‘사랑방’이 되고 있다.


ⓒ주책필름

“주책필름이 문을 열 때만 해도 당곡역 근처에 주책필름이 유일한 서점이었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놔도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 책방을 찾아준 사람들이 남긴 후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지고, 아무래도 비슷한 취향을 만나다 보니 방문횟수도 늘어나는 것 같다.”(최소영)


◆ 독자들 ‘취향’ 저격…함께 만들어가는 주책필름만의 분위기


최근 시작한 단편영화 상영회, 그리고 책과 술을 연결해 메뉴를 추천하는 ‘이달의 주책’ 등 주책필름을 채우는 행사도 다소 독특했다. 신성일 대표는 “이 또한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생긴 개성”이라고 설명했다.


극장, 서점을 운영하며 글도 쓰는 신 대표는 나 홀로 예술 활동을 하며 느끼는 외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예술인들의 ‘생존신고’ 모임을 열었는데, 이때 많은 예술인들이 ‘공감’하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일화를 전했다.


이 외에도 최 대표가 운영하는 ‘희곡’ 낭독 모임 등 주책필름에도 여느 서점처럼 다양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속가능한 모임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라며 “이를 위해선 우선 우리가 공감하고, 좋아하는 시도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짚었다.


ⓒ주책필름

조용히 혼자 책을 읽는 힐링 책방보다는, 적극적으로 취향을 나누는 만큼 결속력도 더욱 강화됐다. 그리고 이것이 곧 주책필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신 대표는 “혼술하며 책을 읽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시더라. 이제는 단골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분위기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소 분위기를 설명했다.


“운영 초기, 사람 없는 주책필름에 종일 있다 보니 마음이 갑갑해지더라. 그런데 당시 우리 서점에 와서 글을 쓰던 19살 손님이 있었다. 그 친구도 대화가 필요해 내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더라. 그러면서 ‘사장님이랑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 ‘이곳에 있으면 편해진다’는 후기를 들려줬는데, 그러면서 보여준 글이 ‘숨 쉴 수 있는 공간’ 이더라. 그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나는 숨이 안 쉬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다.”(최소영)


두 대표는 마음을 연 손님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된 주책필름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늘 하루 잘 버텨서 그게 1년이 됐으면 좋겠다. 제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게 너무 힘들지 않나. 그렇게 하루를 채워 꾸준히 나아가고 싶다.”(최소영)


“언제까지 주책필름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잘해보고 싶다. 만약 잘 된다면, 주책필름과 작당모의를 합쳐 공간을 오가며 취향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신성일)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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