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2개월 이상의 국내 리더십 공백 상황
트럼프발 관세 쇼크 대응 역시 큰 리스크로
올 2분기, 1분기보다 한국 수출액 더 감소 예상
해외 투자·인수 합병 등 모두 어려워질 것으로
대통령 탄핵 심판이 결국 인용으로 결론나면서 산업계 전반의 경영 시계가 올스톱으로 멈춰서게 됐다. 사실상 국정 컨트롤타워 공백 장기화가 확정되면서 향후 투자 및 대형 인수합병 등과 관련해 판단을 보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날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까지 본격화된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부가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기업들의 경제 활동에 짙은 먹구름이 깔렸다.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 수개월간 국내 정세를 흔들어왔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지만, 당장 다시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서 이는 또 다른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다. 헌법에선 대통령 파면시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소 2개월 이상의 국내 리더십 공백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번 선고는 특히 한국 경제 상황이 내수 및 수출 모두 휘청이는 상황에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악재가 겹친 상태에서 나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대상으로 25% 상호 관세 적용을 발표했다.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부분의 수출품이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미 한국 산업계가 맞이한 충격파는 상당하다.
미국의 통상압박, 관세 정책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상당 부분 막혀버린 상태에서 기업 경영을 대변해줘야할 정부의 부재는 더 아프게 다가온다. 자연히 기업들은 전반적인 경영 판단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주요 기업들의 국내 사업장은 물론, 생산 시설이 밀집해 있는 베트남과 인도 태국 등에도 46%, 26%, 37%의 상호관세가 적용되면서, 그간 여러가지 전략적인 이유로 해외 사업장에 투자를 단행했던 기업들은 전략을 수정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울러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미국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더욱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 상호관세 부과에 대한 적극 대응이나, 기존 한국 주력 산업인 반도체 등과 관련해서도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모든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4대 그룹 총수들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만나 "정부가 대미 협상을 잘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는데 사실상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글로벌 관세전쟁 등 통상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올해 韓 경제 수출 점차 하락세
탄핵 인용 이전에도 올해는 지난해보다 경제 성장률이 저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에 따르면, 올해 한국 경제는 내수 부진은 다소 완화될 것이나 수출 증가세는 전년도 2.0%보다 낮은 1.6% 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수출은 통상환경 악화로 전년(6.9%)의 높은 증가세가 조정되면서 1.8%의 증가율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KDI 측은 "경기 상황에 비해 높은 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국 불안에 따른 심리 위축이 더해지면서 내수는 부진한 모습"이라며 "수출은 반도체의 호조세에도 불구하고 여타 산업의 부진으로 증가세가 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3월 경제불확실성지수(EPU)는 304.78로 집계됐다. 전달(296.03) 대비 8.75p 올라 300선을 넘었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트럼프 보편관세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 부과 시 우리나라 대미 수출이 9.3~13.1%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이런 대외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 1분기 한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확연히 감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1분기 수출액은 160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33억 달러 대비 2.0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대미 수출 비중 1~3위 품목이 모두 전년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미국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올 2분기엔 1분기보다 더 큰 수출 하락세가 예상된다.
中 우회로였던 동남아에도 관세 폭탄... 韓 기업들 '당혹'
중국과의 교역 관계 변화도 잠재적 리스크로 꼽힌다. 특히 중간재와 부품 수입 의존도가 높아 중국 내 생산 차질은 한국 제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최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인해 중국 내 반도체 관련 생산 시설에 대한 제약도 강화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조달하는 반도체 관련 부품 및 소재의 비중은 약 20%에 달한다. 이런 공급망 불안정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중국의 우회로처럼 여겨졌던 베트남과 인도 등지의 생산 시설에도 큰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과 인도에도 각각 45%, 26%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삼성과 LG 등 주요 기업들의 주요 전진 기지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전자 부품을, LG는 화학, 디스플레이, 이노텍 등 주력 계열사들이 총 12개 법인을 운영 중에 있다.
상법개정안·주52시간제 논란... 기업 목소리 들어줄 곳이 없다
최근 야당인 민주당은 단독으로 상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의 경영환경 및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국회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 회장은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어려운데 상법 개정안은 또 다른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지금 이 타이밍에 꼭 시행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계속 남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주52시간제와 관련해서도 "규제가 창의성을 막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고 온지 약 5일 만에 곧바로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앞선 중국 출장에선 샤오미 전기차 공장과 BYD 본사를 찾아 전장 사업 확대 행보에 나섰다. 일본 출장에서도 전장 분야 등에서 새 기회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제계 한 관계자는 "이미 기업들의 대형 인수합병과 같은 큰 건수들은 멈춰선지 오래"라며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 기업들은 경영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번 탄핵 인용으로 인해 사업 재편이나 해외 투자 등과 관련해선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 경영에 돌입하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