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아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수민(나애진 분)은 인적 드문 골목에서 인스턴트 볶음면 가게를 운영 중이다. 수민의 가게에서는 손님이 아니라면 물 한 잔도 돈을 내고 마셔야 한다. 수민의 친구 태웅(손상준 분)은 배달비 대신 볶음면을 먹으면서 수민을 돕고 있다.
수민이 돈을 아끼기 위해 들인 하우스메이트 유정(김차윤 분)은 어머니가 보내준 재료들로 자꾸 집밥을 만든다.
집밥을 비롯해 집에서 아무 요리도 해먹지 않았던 수민은 유정이 지은 밥을 먹으면서 돈을 지불한다. 유정은 대가를 바라고 밥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민이 자꾸 돈을 주는 게 불편하다.
수민은 세상의 모든 일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수민의 어머니는 양육비를 명목으로 수민에게 8000만원을 청구했으며, 수민은 매달 일해서 어머니에게 돈을 갚고 있었다. 대가 없는 사랑을 받아온 유정과 모든 일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수민의 사고방식은 같은 세상 속 다른 삶을 살게 만들었다.
수민은 유정의 밥상이 불편했지만 어느새 맛있게 느껴진다. 빚을 청산한 마지막 날, 수민은 가게 문을 닫고 태준, 유정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동안 느꼈던 압박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음 날 수민이 유정과 태준에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준다.
이 작품은 삶의 무게를 계산으로 버텨온 인물이 누군가의 선한 의도와 배려를 통해 균형을 바꾸는 순간을 정갈한 리듬으로 포착한다.
수민이 가진 ‘대가 없는 일은 없다'는 신념은 인색함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화된 생존 전략이다. 그 이면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조차 사랑이 아닌 계산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했던 성장 배경과 구조적 고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계산과 손익으로 단단히 무장한 수민과, 사랑으로 연결을 확장하던 유정은 같은 식탁에 앉는 방식으로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거창한 사건 하나 없이도, 매일의 식사라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바꿔놓는 점이 정겹다. 돈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과, 마음이 있으니 밥을 짓는 사람이 나란히 앉는 순간, 우리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세상의 다른 작동 방식을 엿보게 된다. 러닝타임 2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