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반려견 21마리 방치하고 이사…다수 굶어죽었지만 동물보호법 위반 집행유예
법조계 "전형적 동물학대 사유…학대동물 개체 상당하고 잔인, 동물보호법 강화해야"
"동물학대 처벌 수위 높지 않아 대부분 벌금 및 집행유예…적극적인 형벌 적용 필요"
"동물 본인 소유 및 물건 인식하는 경향 여전해…동물보호 위한 인식 변화 이뤄져야"
반려견이 21마리까지 늘어나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집에 유기하고 이사를 가버려 굶어 죽게 한 40대 남성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전형적인 동물학대 사유로 학대동물 개체가 상당하고 잔인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집행유예가 나온 것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여전히 동물을 물건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며 동물권의 보호를 위한 제도나 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 김보라 판사는 최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44)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또 사회봉사 80시간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2월24일 자택에 반려견 21마리를 내버려둔 채 다른 곳으로 이사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2020년부터 반려견 한 쌍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번식해 그 수가 21마리까지 증가했다. A씨는 반려견들을 먹일 사료를 구입하고, 배설물을 치우는 데 부담을 느껴 이런 범행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려견들은 A씨가 이사를 간 뒤 5일간 방치됐다. A씨가 먹이를 주지도 않고 떠나 이들 중 3마리는 죽은 채 발견됐고, 다른 반려견들은 그 사체를 뜯어먹었다.
재판부는 "키우던 반려견을 방치해 3마리를 죽게 하고, 나머지는 유기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수사기관에서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현재는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한다"고 판결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현재 동물학대처벌이 동물유기 300만원, 반려동물 사육 관리 부주의가 2년 이하의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동물학대가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며 "위 사안은 전형적인 동물학대사유로 학대동물 개체가 상당하고 또 잔인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집행유예가 나온 것이 의아하다. 동물보호법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아직 한국에서 동물학대에 대해 처벌 수위가 높지는 않다. 대부분 벌금, 집행유예로 마무리된다"며 "많은 반려견이 유기되어 죽은 점 등은 안타깝지만 범행 동기, 유사 사례에서의 처벌 수위, 적극적 가해행위가 개입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앞으로는 동물권 보호 등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형벌 적용이 필요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동물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고 동물보호법으로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에 대해 사람과 같이 존중해야 할 생명체라기 보다는 본인의 소유, 물건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직접 당사자인 피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종을 울리기 위해 엄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동물권의 보호를 위한 사회적 인식 변화뿐 아니라 제도나 법 자체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