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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너머 숨은 '너의 얼굴이 궁금하다' [D:쇼트 시네마(116)]


입력 2025.04.14 12:20 수정 2025.04.14 12:2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이유나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소진(강채윤 분)은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전 남자친구가 도촬한 영상이 SNS에 퍼졌고 잘못을 한 건 소진이 아니지만 자꾸만 움츠러들게 된다.


집에서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던 소진은 의문의 택배를 받게 된다. 비상식량이 담긴 택배로 수취인도 자신이 아니다. 택배기사에 전화를 하니 장난 전화 취급을 한다.


어느 날 소진은 벽장 너머 기상한 기척을 느끼고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집주인 재림(김도헌 분)으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대신 그동안 밀린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재림의 조건을 수락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얼굴도 모른 채 벽 하나를 둔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지만 나름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소진을 곤란하게 만든 전 남자친구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자 재림이 먼저 나서준다.


소진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재림이 안쓰럽고, 재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학교까지 자퇴하려는 소진이 안타깝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걱정은 자신의 거울이 돼 갈등으로 발화된다.


서로에게 건넨 말은 사실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숨어지내던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부시며 세상을 향해 걸어나갈 준비를 마친다.


이 작품은 은둔과 노출이라는 양극의 공포를 겪는 두 인물이 서로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가는 서사를 통해, 현대인의 고립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SNS를 통해 사생활이 강제로 노출된 소진과, 세상과 스스로 단절한 재림은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공통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묘한 공존을 시작하면서, 영화는 단절의 공간을 작은 연대의 가능성으로 변주한다.


벽이라는 물리적 경계는 처음엔 안전망이지만, 점차 감정과 서사를 공유하게 되는 두 사람에게는 용기 있게 부숴야 할 것으로 전환된다. 서로에게 가하는 무심한 말들이 곧 자기 자신을 향한 질책이라는 설정은, 인물 간 갈등을 단순한 감정 충돌을 넘어 자기성찰의 장치로 활용한다.


이유나 감독은 공간의 한정성과 인물의 심리를 긴밀히 엮어내며, 사회적 폭력과 자기 검열로 인해 움츠러든 이들이 다시 바깥을 향해 걸어나가는 서사에 서늘한 진정성과 위로를 담았다. 특히 도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자발적 고립에 이르는 사회 구조, 신뢰의 회복이라는 이슈를 덤덤하게 포착하면서도, 장르적 상상력과 인간적인 결말로 메시지를 풀어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모두가 소통을 말하지만, 오히려 단절이 더 깊어진 시대.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용기인지도 모른다. 러닝타임 12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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