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논의 못하고 폐기될 위기 처한 ‘재초환 폐지법’
‘가구당 1억원’ 분담금 폭탄에 실거주 조합원도 ‘막막’
“공급 부족 공감대…규제 일변도 정책 추진 힘들 것”
조기 대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으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재건축 대못으로 꼽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 역시 물 건너갈 우려가 커지면서다.
18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되던 재초환 폐지 논의는 지난해 12월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사실상 답보 상태다.
재초환은 재건축을 통해 조합원이 얻는 이익이 1인당 평균 8000만원이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가량을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당초 초과 금액 기준이 3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 차례 법 개정을 거쳐 8000만원까지 완화됐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 추진이 어려워진 데다 조합원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힘은 제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재초환 폐지’를 발의했다.
재초환 폐지법은 지난해 6월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져 문재인 정부에서 되살린 법안인 데다 부자감세 정책이라며 야당에서 완전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재건축 부담금 부과 가능성이 큰 단지들 안팎에선 “정권이 교체돼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재초환이 본격적으로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초환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도 빠른 속도로 동의율을 채우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지난달 24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국회 ‘재초환 폐지 촉구 청원’ 등장, 동의율 67% 달성
전국 재초환 대상 단지 51곳…재초환 재개시 공급 확대 발목
지난 17일 기준 해당 청원은 3만3693명의 동의를 얻어 동의율 67%를 기록하고 있다. 오는 23일까지 5만명의 동의를 얻을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청원 내용을 심의하게 된다.
청원인은 “재초환은 주택가격의 안정과 사회적 형평을 도모하려는 취지와 달리 실거주자(조합원)에게 과도하고 불명확한 산정 기준으로 분담금을 부과하는 역차별법”이라며 “과도한 분담금은 실거주 주민의 부담을 키워 새로운 거주 환경을 접해 보지 못하고 매도하는 사태를 만들거나 새로운 대출의 빚을 떠안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준공 후 재건축 부담금 재산정 및 부과 절차를 앞둔 단지는 전국 51개 단지, 1만8000가구 정도다. 조합원 가구당 평균 부담금은 1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선 재초환 폐지가 무산되면 공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힘들 것으로 내다본다. 민간 재건축뿐만 아니라 정부가 특별법까지 만들어 추진 중인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재정비 역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사비 부담이 대폭 커지면서 조합원 분담금은 이미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여기에 재건축 부담금까지 떠안으라고 하는 건 정부가 주택 공급을 확대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돼도 힘든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극으로 달리니 시장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살던 집 한 채 고치려다 빚더미에 앉게 생겼는데 누가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냐”고 꼬집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만약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보다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은 폐기되고 1기 신도시 재건축도 브레이크가 걸리며 전국적으로 개발 사업이 대규모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반시장적인 정책을 밀어붙일수록 ‘문재인 정부 시즌2’라는 오명으로 견제 여론이 강해질 수 있어 일방적인 정책 독주는 하기 힘들다”며 “집값이 과열되면 규제를 더 강화하겠지만 반대로 안정을 찾는다면 섣부른 정책으로 시장을 자극하진 않을 수 있어 1기 신도시 재건축과 3기 신도시, 서울 정비사업 등 공급 확대 정책도 그대로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서울 등 수도권의 신규 공급 부족은 여야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추진하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사업이나 3기 신도시 조성 등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초환 폐지나 재건축·재개발 촉진 특례법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지만 또 다른 공급과 관련된 계획들의 추가적인 시행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