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2.75% 동결
물가와 환율에 금리 인하 '발목'
"관세 타격 등 내수 회복 고려하면 5월 인하 유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지난 17일 2분기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2월에 이은 연속 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차가 더 벌어지면 환율, 물가, 경기 등 복합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는 해석이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하며 통화정책의 방향을 완화 기조로 전환했다.
이어 11월에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강한 정책 전환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올해 1월에는 금리 동결을 통해 한 차례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2월 회의에서는 다시 한번 0.25%p 추가 인하를 결정했다.
이 같은 행보는 내수 부진과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혼란 속에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고작 0.1%에 머물렀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타격 등 글로벌 위험 요인까지 겹치면서, 올해 성장률 역시 1.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회복을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쉽게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높은 물가 상승률과 환율 불안정성 때문으로 보인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는 석달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가 임박한 데다 국내 탄핵 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지난달 말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어 지난 9일 상호관세가 본격적으로 발효되자, 환율은 장중 기준 1484원까지 올라서 2009년 3월 금융위기 이후 약 1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들어 상호관세 유예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환율은 한때 142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리스크로 인해 환율이 다시 급등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더욱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한·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정책금리 상단은 4.50%로, 한미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75%p다.
이번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진행된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관련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8%가 동결을 예상했고, 실제 결과도 시장의 예측과 일치했다.
그러나 시장의 관심은 다음 회의인 5월로 옮겨가고 있다. 전문가 대다수가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만큼 5월에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발 관세 전쟁의 수출 타격이나 불확실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내수 회복을 고려하면, 한은이 다음 달에는 금리 인하를 미루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한은이 환율 안정과 경기 회복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부진한 성장률과 경제전망 하향 조정 등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면서도 "이런 가운데 미국이 단행한 관세 조치가 국내 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미 간 금리 차이도 고려해 인하 시점을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