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엔비디아·AMD·인텔 등 AI칩 수출 통제
中, 오히려 자급력 키울 기회...CXMT 등 급성장
K칩, 엔비디아 매출 감소...中과 경쟁으로 고심
미국이 연일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계속되는 대중 제재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가속화 시킬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갈등 속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에 저사양 AI 가속기 H20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H20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제한 강화 이후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제품으로, 합법적인 대중 수출이 가능한 AI 칩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공개한 AI 모델도 H20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엔비디아 제품의 수출을 제한한 것은 H20이 중국 AI 산업의 급성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비교적 저사양의 H20 칩만으로 AI 기술력을 증명했다.
미국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AMD와 인텔에도 AI 프로세스 중 일부를 중국 고객사에 판매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미국의 강한 압박에도 중국은 반도체 자립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자급자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 우한산신 등 일부 메모리 기업은 HBM2까지 개발해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XMT는 추격 속도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CXMT는 당초 계획보다 2년을 앞당겨 지난해 하반기 HBM2(2세대) 제품을 양산했다. 내년에는 4세대 HBM3 개발 및 양산을, 2027년에는 5세대 HBM3E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선 2세대 제품에서 2년여를 앞당겨 양산에 성공한 만큼, 다음 세대 제품의 양산 일정도 빨라질 수 있다.
오히려 중국 내에선 미국의 대중 제재를 기회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H20 칩 수출 규제로 인해 인AI 칩 공급망 혼란을 초래하는 가운데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기업들의 칩 기술 개발을 재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로이터통신도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나 텐센트 같은 중국기업이 중국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수록 화웨이의 칩 설계와 소프트웨어 역량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체계적인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있는 만큼, 오히려 이같은 기회 속에 반도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혀갈 것이란 평가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이제 중국이 조금 더 집중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됐다"면서 "미국이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 상황에서 반도체 생태계를 탄탄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고심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당장 엔비디아 H20에 들어가는 HBM 물량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20용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해 왔다는 점에서 양사의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중국의 자급자족으로 중국 내 시장의 경쟁력 악화도 예상된다.
이 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만큼의 기술력을 가지게 되면 정부가 나서서 자국 기술을 쓰라고 할 것"이라며 "그런 상황은 한국 기업들한테 좋은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