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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위에 세운 정통, ‘동숭무대 소극장’의 이유있는 고집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4.18 14:00 수정 2025.04.18 17:15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다시, 소극장으로㉑] 서울 종로구 동숭무대 소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자신감으로 시작해 사명감으로 이어가는, 동숭무대 소극장


2015년, 대학로에는 한바탕 소극장 폐관 바람이 불었다. 상상아트홀, 꿈꾸는 공작소, 대학로극장, 아리랑소극장, 일상지하, 김동수플레이하우스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오죽했으면 마로니에공원엔 연극인 150명이 둘러맨 상여까지 등장했다. ‘대학로 소극장의 죽음’을 선포한 이 퍼포먼스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연극계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엔 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일이 반복됐다. 극단 동숭무대(1998년 창단) 임정혁 대표가 2002년 소극장을 처음 시작하면서 당시 아리랑소극장이 위치했던 건물에 자리를 잡은 것도 “역사를 지켜가고 싶다”는 일념에서였다. 그곳에도 극장이 문을 닫은 뒤, 당구장이 들어선 터였다.


임 대표는 “황정순 소극장이면서 아리랑소극장이었던 그곳에 공연장이 없어지고 당구장이 생긴 걸 보고 속상했다. 마침 당구장이 문을 닫아서 바로 인수했다”며 “젊은 나이에 괜히 역사를 지켜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고 동숭무대 소극장의 시작을 회상했다.


현재는 혜화초등학교 앞 경주이씨중앙화수회관 건물 지하 1층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정통’을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처음 소극장을 개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극장을 마련한 임 대표는 이젠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극장 운영은 수익구조가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주의 공연을 한다고 하면 공연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제작비에만 2000~3000만원 정도 나가는데, 수익은 많아야 500만원 정도니까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단원들이 있고, 이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하니까 버티는 거죠.”


“좋은 작품이 곧 공연장의 가치”


월세와 제작비 등을 충당하고 안정적으로 극장을 운영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해당 극장에서의 공연 외에 다른 수익원이 필요하다. 물론 상업 연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수익을 내는 비교적 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임 대표는 연출 작업과 지방 공연 등으로 운영비를 메꾼다고 설명했다. 동숭무대 소극장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좋은 작품이 활성화될 때 그 공연장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수익화를 위해 상업 공연을 할 수도 있지만 동숭무대 소극장의 가치는 사라지는 거죠. ‘건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이미지’를 살리는 행위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자체 제작 작품 외에 대관을 받을 때도 소위 ‘삐끼공연’, 그러니까 호객행위를 하는 공연이나 건전하지 않은 작품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가로 7.7m, 세로 7.7m의 적당한 크기의 무대를 둘러싼 두 개의 면에 객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동숭무대 소극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무대에 올린 ‘청춘예찬’ ‘고도’ ‘가석방’ ‘젊은 예술가의 반쪽짜리 초상’ 등을 올리면서 극단의 정체성이 곧, 극장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보다 더 연극적인’ 연극을 통해 극단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관객과 호흡해왔다.


“극단 동숭무대는 대체로 실험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제 성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이와 함께 공연장과 공연 단체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민간공연장상주단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단막극제’도 13년째 진행 중입니다.”


임 대표는 동숭무대 소극장의 대표인 동시에,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동숭무대 소극장은 물론 국내 소극장의 ‘살림’을 도맡았다는 의미다. 때문에 그가 느끼는 민간 소극장의 어려움은 단순히 동숭무대 소극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실 대학로 민간 소극장은 어두운 현실에 직면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일반 관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연을 보러 가면 연극계 지인들을 다 만나요. 서로의 공연을 봐주는, 일종의 ‘품앗이’를 하고 있는 셈이죠. 관객을 불러모으는 ‘기획자’가 필요한데, 돈이 안되니까 포기하고 큰 시장으로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정통 연극을 기획하는 전문 기획자가 사라지는 거죠. 이를 위해 10여명의 기획·홍보 인력을 국가에서 지원해주면서 통합적으로 작품을 기획·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학로 민간 소극장의 현실이 힘들어질수록 임 대표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감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동숭무대 소극장은 이미 브랜드화, 이미지화가 되어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제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알릴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기도 하고요. 현실적으론 건물을 산다면 더없이 좋겠죠(웃음). 그렇게 되면 무료 대관으로 좋은 작품을 더 올려주고 싶습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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