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최근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동성애자이며, 2001년 뉴욕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고 밝혔다. 윤여정의 가족사 공유는 여전히 엇갈린 인식과 태도 속에 놓인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들을 향한 시선에 질문을 던졌다.
윤여정의 인터뷰는 할리우드 영화 '결혼 피로연' 개봉을 앞두고 이뤄졌다. 윤여정은 영화에서 동성애자인 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할머니 자영을 연기했다. 이 캐릭터에 대해 그는 "실제 내 경험이 반영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결혼 피로연'은 대만 감독 리안의 1993년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동성 커플의 위장결혼을 중심으로 가족과의 갈등, 수용의 과정을 다룬다.
영화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적 틀을 다루지만, 그 이면에 소수자 정체성과 가족 간의 갈등과 이해를 통해 소수자를 포용하는 테마가 깔려 있다.
이번 윤여정의 발언이 특별한 이유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커밍아웃은 이제 점차 익숙해지고 있지만, 부모 세대가 이를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지지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여전히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여정은 오스카를 수상한 배우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대표 예술가로서, 그 상징성은 크다.
현재 전 세계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국가는 총 39개국에 달한다. 대부분 유럽과 북미, 남미에 집중돼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대만, 네팔, 태국 단 세 국가만이 동성혼을 인정했다.
한국은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명시적 조항은 없으나 동성 간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 보호자 지정, 상속,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 실질적 권리에서도 소외된다.
2014년에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서울 서부지법에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을 두고 불복 신청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각하했다.
동성 커플의 권리 보장을 둘러싼 법적 쟁점도 이어지고 있다. 김용민·소성욱 부부는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사실혼에 준하는 관계로 인정받아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후 공단은 이를 번복해 자격 인정을 무효로 처리했고, 이에 두 사람은 "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결국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후 최소 4쌍 이상의 동성 부부가 유사한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한국의 사법영역 안에서 동성 커플이 법적 권리를 일부 인정받은 최초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윤여정은 해당 인터뷰 말미에 "한국이 마음을 열기를 바란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의 말처럼 한국은 앞서 언급했듯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으나,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 속에서 제도화 논의는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나 가정 등 일상적 환경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나 대화의 기회도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여정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 성소수자 가족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은, 가족의 의미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다양성의 경계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