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한국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주연을 맡은 후 팬미팅을 개최하는 등 국내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작사와 OTT 플랫폼이 앞다퉈 일본 배우와의 협업에 나서고 있다. 이는 콘텐츠의 다양성 및 글로벌 확장성을 겨냥한 전략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는 2026년 공개 예정인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의 최종 캐스팅 라인업을 최근 공개하며 오카다 마사키와 현리의 합류를 공식화했다. 오카다 마사키는 인기 드라마 '리갈 하이'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졌으며 2025년 제48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등 손색없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다. 재일한국인인 현리는 미국 HBO '도쿄바이스 시즌2'와 일본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 등의 작품으로 인지도를 쌓은 배우로, 2022년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넷플렉스에서도 일본 배우와의 협업이 이어졌다. 2월 27일부터 매주 목요일 한 편씩 공개되는 예능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에는 일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와 가수 성시경이 함께 출연해 한일 양국의 맛집을 찾아 두 나라의 식문화를 체험하는 콘텐츠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로 국내 시청자에게도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최근 쿠팡플레이 예능 '직장인들'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며 신동엽, 이수지, 지예은 등 국내 연예인들과 코믹한 호흡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일본 배우 후쿠시 소타가 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통해 고윤정, 김선호 등과의 로맨스 호흡을 예고했고, 일본의 국민 배우인 타케나카 나오토는 SBS '모범택시3'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한국 작품에 일본 배우들이 간헐적으로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최근처럼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수의 일본 연예인들이 합류 소식을 전하는 것은 이례적인 흐름이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캐스팅 라인업이 공개될 때마다 "신기하고 기대된다", "깜짝 놀랐고, 그만큼 흥미로운 캐스팅이다", "한국 콘텐츠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며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굳이 일본 배우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어가 안되는데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이냐", "이질감이 느껴진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일본 배우의 한국 콘텐츠 진출을 반대하는 시청자는 가장 주된 이유로 '언어'를 꼽는다. 일본어 특유의 발음과 억양이 한국어에 묻어났을 때, 전달력은 물론이고 몰입에도 방해가 된다는 의견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의 불황으로 다수의 한국 배우들 마저 "일이 없다"고 고백한 상황인 만큼 일본 배우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한 반감 또한 있었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본에서 케이 콘텐츠(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우리나라도 제이 콘텐츠(J-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제이팝으로 관심이 넘어오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이전에는 마니아층이 대다수였다면 이제는 대중성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일본 배우가 한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양자의 이득이 있다"며 "우선 일본 배우가 맡은 배역이 일본인이라면 당연히 현실감이 생길 것이고, 국내 팬덤의 드라마 유입도 용이하다. 또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소비가 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일본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에 비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 배우에게 한국 드라마 출연은 글로벌 진출의 발판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은 한국 콘텐츠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한국 콘텐츠는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OTT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부터 '폭싹 속았수다'까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인기를 누리는 작품도 많다. 그런 만큼 제작사 입장에서는 현지에서 인지도가 높은 일본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이 콘텐츠 확장성과 기대 수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다만 무분별한 해외 배우 캐스팅은 콘텐츠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단편적인 화제성을 모을 수는 있겠으나 작품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고 콘텐츠의 흐름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단순히 인기 있는 일본 배우의 캐스팅보다는, 캐릭터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류 콘텐츠의 세계화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세계화의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시청자에게 다가가는가에 있다. 일본 배우들의 한국 콘텐츠 진출이 '반짝 화제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교류가 아닌 서사의 일부로 녹아드는 전략적 활용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