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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기아 EV4 "세단이 왜 안팔려? 살 게 없었겠지"


입력 2025.04.24 08:30 수정 2025.04.24 08:30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기아 전기 세단 'EV4' 시승기

전기차 가속감+세단 주행감 다 잡았다

준중형 맞아?… 준대형급 공간감

K5 신화, 전기차로 쓴다… 세단 시장 '기강잡기'

EV4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기아가 전국 세단파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K5 신화'를 전기차로 다시 써 볼 작정인 듯 하다. SUV가 기본으로 자리잡은 요즘 같은 시대에 보란 듯 전기세단 'EV4'를 내놓으면서다.


특히 EV4는 EV3에 이은 두번째 '보급형 전기차'로, 올해 최대한 많이 팔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녀석이다. 시장 규모로 보나, 역할로 보나 쉽지 않다. 과연 국내 시장에 다시 '세단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직접 시승해봤다. 막히는 시내 한복판부터 고속도로, 굽이진 마을길까지 80km 가량을 고루 달렸다. 시승 모델은 EV4 어스 트림으로, 가격은 5370만원이다. 아직까지 보조금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적용시 4000만원 후반대에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V4 전면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분명히 본 듯 한데 다르다. EV4의 첫 인상은 최근 기아에서 주구장창 밀고있는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 썼음에도 묘하게 다른 냄새를 풍긴다. EV3는 EV9 같고, 카니발은 쏘렌토 같던 그간의 신차와 달리, 익숙한 듯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자세히보니 세단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온 얼굴이었다. 보닛이 길게 빠지면서 그간 SUV 모델에선 넓은 면적을 자랑하던 전면부가 얇게 압축됐는데, 덕분에 날렵하고 세련된 인상이 더해졌다. 전기차 라인업 중에선 EV6와 가장 비슷하면서도, 머리를 눌러놓으니 한층 섹시하게 느껴진다.


반면 헤드램프는 세로로 심플하게 처리되면서 SUV 라인업과 차이를 뒀다. EV3, EV9이 심심할 뻔한 얼굴을 거대하고 깊숙한 헤드램프로 상쇄했다면, EV4는 남는 공간없이 깔끔하게 앞코를 눌러 얼굴의 존재감을 살린 덕에 화려한 헤드램프가 필요하지 않았던 듯 하다.


EV4 측면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얼굴만 봤을 땐 나름대로 잘 정리된 세단 같았는데 측면으로 돌아서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설다. 매끄럽게 쭉 뻗은 줄 알았던 보닛은 불룩하게 꺾인 형태였고, 두툼한 엉덩이는 1열 루프부터 거의 직선으로 이어졌다시피 할 정도로 잔뜩 솟아있다. 마치 쿠페형 세단 같기도, CUV 같기도 하다.


정신없을 정도로 다채롭게 들어간 블랙 포인트와 군데군데 꺾어놓은 형상은 옆태를 더욱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선을 많이 사용했는데, 휠 아치 모양부터 무려 5번을 꺾었고, 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어 하단의 블랙 가니쉬 역시도 뒤쪽으로 가면서 한번 꺾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캐릭터라인도 차량 도어 중앙을 가로지르는 형식이 아니라 A필러 하단, C필러 하단을 짧게 잘라내는, 범상치 않은 선택을 감행했다. 루프 색상은 내버려두고 필러만 검정색으로 처리한 것 역시 독특하다. 다소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 수는 있지만,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존재감 하나는 제대로 챙긴 듯 하다.


EV4 후면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궁금증을 유발하던 뒤태는 제대로 들여다보니 좀 높게 치솟았다 뿐이지, 전형적인 세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심플한 수직 리어램프는 전면의 디자인을 그대로 넘겨받았고, 중앙에 심플하게 박힌 기아 엠블럼은 기아의 전기차 라인업임을 증명한다. 그러면서도 스포일러와 양쪽 리어램프를 잇는 중앙부, 또 엉덩이 하단부가 군데군데 접히면서 마냥 심심하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EV4 내부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내부는 기아의 첫 보급형 전기차였던 EV3의 형 답게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특유의 친환경 소재와 직관적으로 살린 물리버튼, 암레스트 하단에서 쭉 뻗어나오는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까지. EV3로 글로벌 무대에서 온갖 상을 휩쓴 만큼, 일종의 자신감과 믿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부한 건 또 아니다. 세단이라는 특성을 반영한 걸까, EV3보다는 한 톤 낮아진 중후한 분위기가 살짝 가미됐다. 친환경 소재를 똑같이 적용했지만 EV3는 젊고 생동감있는 느낌을 강조했다면, EV4는 시트 패턴이나 돌 표면 같은 느낌의 도어트림 등을 통해 정제된 느낌을 살렸다. 세단을 구매하는 소비자층이 20대보다는 30대, 40대에 몰려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EV4 2열. 시트에 앉았을 때 넉넉한 레그룸이 확보된다.ⓒ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잘 갖춰진 1열은 어떤 차에서도 구경할 수 있지만, 내부의 정점은 2열에 있다. 분명히 준중형인데, 좌석에 앉았더니 그랜저 보다도 넓게 느껴진다. 전기차라 바닥 공간에 여유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레그룸이 이렇게 넉넉하다니. 공간 빼기에 도가 터버린 기아의 주특기가 정점에 달한 듯 했다.


헤드룸도 바닥 공간을 플랫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 특성이 더해지면서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꽤 넉넉한 수준이다. SUV 인기가 높아지면서 세단을 패밀리카로 쓰기 어렵다는 인식이 짙어졌지만, 뒷좌석을 폴딩해서 사용할 일이 굳이 없다면 패밀리카로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공간감이다.


EV4 ⓒ기아

하지만 역시 세단의 최대 장점은 승차감이라고 했다. 깜찍한 외모에 그럭저럭 넓은 공간을 보여주던 EV3 수준의 장기로는 SUV로 돌아서버린 세단파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가장 궁금했던 것 역시도 페달을 밟은 이후였다.


EV4는 도로로 나가자마자 이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작정하고 전기 세단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증명하기 시작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면서도 날쌔게 가속하는데 목줄을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정신없이 뛰어가는 게 아니라, 아주 신사적이고 매너있게 보폭을 넓힌다. 이 정도로 달릴 줄 아는 놈을 사진찍겠다고 가만히 세워뒀다니 미안한 마음이 불쑥 들었을 정도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가능한 정숙성과 빠른 가속성을 십분 살리면서도, 세단에 기대하는 승차감까지 잡아냈다는 점은 무심코 탄성을 내뱉게 만드는 요소다. 보통 보급형 전기차 모델들의 경우 바닥이 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대부분인데, EV4는 바닥이 한차례 막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노면의 충격을 완벽하게 걸러준다. 보급형 세단이 아니라, 고급 세단을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가속력 역시 100km 이상 고속 구간에 접어들면 힘이 달리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느껴졌던 EV3와 달리, 아주 시원시원하게 내지른다. 차급과 형태가 다르니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두 번째 보급형 모델이라는 점에서 보면 장족의 발전을 이뤄낸 듯하다.


밟는 대로 거침없이 뛰쳐나간다고 해서 경박스럽다거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스티어링휠이 살짝 가볍다는 느낌은 있지만, 빠른 속도에도 안정적으로 잡아주면서 차체의 흔들림을 막아낸다.


전비는 감격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내달리고도 시승을 마친 후 확인한 전비는 7.4km/kWh. 작정하고 아끼면 9km/kWh까지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애초에 530km라는 인심좋은 주행거리도 고마운데, 전비까지 훌륭하다.


시승을 마치고 나니, SUV가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시대에 당당히 세단을 내놓은 기아의 심리가 파악되는 듯 했다. 세단이 안 팔리는 게 아니라, 전기차 시대를 맞닥뜨린 정통 세단파들이 살 만한 모델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쏘나타, K5, SM5, 말리부가 싸우던 당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세단파들이여, 이번엔 정말 다르니 믿어봐도 좋다.


▲타깃

-SUV 홍수 속에서 기개를 잃지 않은 세단 의리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가장 중요한 당신


▲주의할 점

-골프백이 안들어가네… 2열에 몰아주느라 신경 못쓴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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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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