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은 교화를 목적에 두고 있지만, 수사 자체는 극히 냉철하게 진행된다. 즉 형사사건의 피의자라면 성실히 조사에 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팩트’와 ‘증거’를 기반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야 한다.
물론 죄질의 경중과 관계없이,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에게도 방어권은 보장된다. 하지만 그 중 자신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심지어 이미 어떤 자료가 확보돼 있는지조차 모른 채 조사를 받다보면, 진술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수사기관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질문의 흐름, 방향, 맥락 모든 것에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인데, 일반인인 피의자는 그 흐름에 그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곧 ‘자백’처럼 보여 억울하게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형사사건 수사 초기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사실상 필수가 되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절차 전반이 크게 변화되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사건이 경찰 수사 이후 검찰에 송치됐지만, 이제는 경찰이 자체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려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도 형사 사건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무대가 ‘검찰 조사 단계’에서 ‘경찰 조사 단계’로 이동한 셈이다.
결국 초기 대응이 사실상 형사 사건의 승부처이며, 변호인의 조력 없이 이 구간을 통과하는 것이란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찰 조사 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예상 질문을 숙지하고 조사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대한 시험을 앞두고는 반드시 기출문제를 풀고 모의고사를 치르듯, 피의자 또한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피의자의 말버릇, 반응, 습관을 확인하며 불리할 수 있는 진술 포인트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소한 말이라도 ‘책임 회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라면 표현을 교정한다. 또한 진술의 순서를 설계하고, 수사기관의 질문 기법인 ‘되묻기’ 방식에도 일관되게 답변하도록 하고, 수사기법인 추궁이나 엄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
쉽게 말하면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경찰조사는 변호인이 대신 말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 실수 없이 버텨내는 것, 그게 1차전이며 이 과정만 잘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변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감경 사유를 정리하고, 적절한 법리를 적용해 혐의를 벗겨내는 건 변호사의 몫이기에 그들의 손에서 통제가 불가한 영역까지 제대로 대응해주는 것이다.
대구 법무법인 가나다의 이수진 형사전문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의 초기 대응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2심이나 3심에 와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형사사건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한 번 불리해진 구조를 뒤집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다면 어떤 혐의를 받고 있던 간에 신속히 형사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하며, 경찰 조사에 무작정 임하기보다는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