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혀 있는 제약·바이오 소통 창구
정보가 주가를 움직이는 산업
부족한 정보에 전전긍긍하는 주주들
주주친화 정책 이전에 소통이 먼저
제약·바이오 업종을 출입한 이후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바로 IR 담당자 목소리다. 증권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IR 담당자의 부재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업 보고서에 기재된 IR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지금 담당자가 없습니다” “번호 남겨주세요” 혹은 말 그대로 ‘부재중’
물론 모든 기업에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니다. IR 내선 번호로 연결이 되는 기업이 분명 있지만 그 수가 현저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기업에 호재 소식이 있을 땐 연결이 수월한 편이다. 악재가 터지면 IR 담당자들은 입이라도 맞춘 것 마냥 전화를 받지 않는다.
IR 번호는 사실상 주주총회를 제외하면 주주와 기업 간의 유일한 소통 창구다. 제약·바이오 분야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기자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재에 IR 번호는 어느새 소통 창구가 아닌 '굳게 닫힌 문'이 됐다.
문득 얼마 전 열렸던 모 바이오 기업의 주주총회 현장이 떠오른다. 주주총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주주는 “IR 전화나 잘 받으라”며 “주주들 전화도 받지 않으면서 말로만 하는 주주친화 정책이 무슨 소용이있냐”고 작금의 상황을 관통하는 주제를 던졌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밸류업 프로젝트와 같은 주주친화 정책을 강조한다. 주가 부양을 유도하는 기업의 움직임은 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지니 주주친화로 불러도 무방하긴 하다. 하지만 ‘친화’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주주와 가장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내선 전화를 닫아 놓고 ‘주주친화’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다.
실제로 제약·바이오 종목 토론방이나 익명 게시판을 살펴보면 연락이 닿지 않는 IR 담당자로 인해 답답함을 호소하는 글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통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기업에 자신의 ‘돈’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IR 번호는 기업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고 숫자 너머의 맥락을 짚을 수 있는 창구다. 그러나 응답 없는 IR 전화를 기다리는 주주들의 마음이 취재를 하는 기자보다 덜 절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IR 자료의 ‘질’도 문제다. 여러 상장기업들이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리는 실적공시에 구체적인 실적 분석이나 향후 계획을 친절히 설명한 PDF 자료를 첨부하는 것과 달리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공시 첨부란은 대부분 텅 비어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도 마찬가지다. 온통 긍정적인 수식어만 가득할 뿐 주주들이 원하는 가치 있는 정보는 찾기 힘들다.
신약 개발까지 10년 넘는 시간이 걸리는 제약·바이오 산업은 다른 분야보다 ‘정보’가 주는 힘이 크다. 임상 결과, 기술 이전, 허가 일정 등이 담긴 단 한 줄의 뉴스가 기업의 주가를 움직인다.
공시로는 부족한 정보, 기업 입장에서 쓰여진 자료, 답이 오지 않는 IR 전화. 정보가 곧 주가로 이어지는 산업에서 소통하지 않는 기업을 주주가 신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의 정보들이 ‘사실’이 맞냐며 전전긍긍하는 주주들에게 안심 혹은 정보를 줘야 할 IR은 현재 무성의한 숫자의 나열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 배당금 증액 등의 결단도 물론 주주들을 위한 정책이나 전화 한 통, 자료 하나에 책임감 있게 응답하는 것 또한 주주들을 위한 책임이다. 소통이라는 기본이 빠진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입을 닫는 기업'과 '추정하는 기자', '오해하는 주주'들만 남는다면 결국 기업의 리스크가 돼 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