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침묵 항의'로 대응했으나
우원식 의장 한 대행 향해 '한 마디'
국민의힘·민주당, 우르르 나와 대치
한덕수 출마 임박…사실상 대선 데뷔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청에 들어서자 로텐더홀에서 야4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준비해 온 현수막을 펼치고 "졸속매국 관세 협상 중단하라" "국회는 당신이 올 곳이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한 대행은 꼿꼿한 자세와 빠른 걸음으로 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한 대행이 시정연설을 시작하자 일부 야4당 의원들은 항의 차원에서 퇴장을 하거나 피켓 시위를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 '고성' '피켓' 등 거친 항의 대신 침묵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당초 당 지도부는 한 대행 시정연설에 침묵으로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대행이 거대 1당인 민주당에 의해 핍박받는 모습이 연출되면 대선 출마 명분을 세워, 오히려 한 대행을 띄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대행 시정연설 동안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내란대행" "사퇴하라"라고 소리치기는 했으나 대체로 큰 소란 없이 연설은 마무리됐다.
소동은 한 대행이 연설이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 대행을 불러 "잠시 자리에 앉아 계시라"고 말한 뒤 "국회의장으로서 권한대행께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대정부질문의 국회 출석 답변과 상설특검 추천 의뢰 등 해야 할 일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별하기를 바란다"며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이미 확인됐듯 대통령과 권한대행의 권한이 동일하다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발상"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공언한 것과 달리 올해 본예산 조기집행실적이 상당히 부진하다"며 "벌써 2분기인데 추경 편성을 미뤄온 정부의 설명에 비춰볼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매우 엄중한 때"라며 "12·3 비상계엄 여파가 여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의장의 발언에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연단에 올라 우 의장에게 항의하자, 박찬대 원내대표와 민주당 의원들도 지지 않고 연단에 오르며 반발한 것이다.
한 대행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우 의장의 발언을 모두 들은 뒤, 본회의장을 떠났다. 민주당 일각에선 "우 의장이 자기 정치를 한 것이 아니냐" "이럴 거면 침묵 항의가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었냐"는 비판도 나왔다.
한 권한대행은 로텐더홀을 나오면서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생 많으셨다"고만 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본청을 떠났다.
한 대행이 여전히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한 대행이 이날 저녁 '한미 2+2 통상 협의' 성과를 바탕으로 5월 1일 황금 연휴가 시작하기 전인 내주초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날 한 대행은 시정연설에서 '산불' '미국과의 관세 전쟁' '민생 안정' 등 추경안 내용 외 정치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에선 사실상 대선 출마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한미 관세 협상, 산불 피해 등을 이야기한 것이 곧 대선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방청석을 향해서 '젊은 세대, 청년을 위한 절실한 투자'를 이야기한 것이나, 산불 피해를 언급하면서 '여기 계신 국회의원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한 것은 현장에서 더해진 정치적 발언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시정연설이 끝난 뒤 한 대행을 향해 "한미협상을 이용해 대선해 출마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대선 출마가 사실이라면 한덕수 권한대행이 주도한 미국과의 2+2 통상협의는 사전선거운동이자 불법적인 관권선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민석 수석최고위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내일 오전 한 대행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출마용 졸속관세협상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한 대행 출마에 대한 파상공세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