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관객, 줄어드는 지원"
정부는 최근 서울예술단의 광주광역시 이전을 추진, 국공립 예술단체의 지역 분산을 통해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문화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겠다는 방향 자체에는 이견이 없지만, 정작 지역에서 오랜 시간 자생적으로 운영돼 온 문화행사들은 구조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지역 영화제는 지역 주민들에게 대중문화와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 경험을 제공하며, 동시에 지역 관광 자원 및 도시 브랜딩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남달랐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대규모 영화제 외에도 무주산골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등 대중과 영화팬들에게 인정받으며 각 지역에서 브랜딩한 영화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여름철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이벤트로 정착하며 지역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상징적인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실제 지난해 8월2일부터 사흘간 개최된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1만 4500여명의 관객이 방문해 2023년 8100여명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강릉씨네마떼끄 김슬기 사무국장은 "영화제의 관객 설문조사를 통해 영화제 참가를 목적으로 강릉에 방문했다고 74%의 응답자가 답변했다. 저희가 같이 운영하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관객 프로그램에서도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신영극장의 존재 때문에 강릉으로 이주하게 되었다는 관객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는 지역 생활인구가 유입되는 데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펼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라고 지역 영화제의 긍정적인 역할을 전했다.
그러나 관객 호응과는 달리, 예산의 뒷받침이 부족해 영화제의 성장은 제약을 받고 있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강릉시로부터 지난해 예산 1억 2000만원에서 7000만원 삭감됐다. 강릉시네마떼끄는 영화인 초청계획 축소,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 축소 등을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무주산골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제12회 영화제에는 6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5일동안 총 3만 5000여명이 다녀갔다. 이는 제11회 3만 2000여명보다 늘어난 수치로 관객 유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무주산골영화제는 영화제 기간을 이틀 축소해 사흘 동안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축소는 관객 수 증가와 달리 예산이 지난해와 같은 11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데 따른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전북독립영화제 역시 25회를 맞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삭감으로 인해 영화제 일정을 기존 하루 줄여 사흘 동안 개최한다. 물가 상승으로 운영비는 늘어난 반면, 지원 예산은 오히려 200만 원 줄어든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히 액수의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 지원 조건으로 '장편 10편 이상 상영', '인건비 사용 금지', '3회 연속 개최 및 3일 이상 개최 영화제만 지원 가능' 등의 조건들이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지역 소규모 영화제는 조건 자체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이는 오히려 영화제 간의 경쟁을 유도하며 생존을 위한 갈등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영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지역 영화제가 지역영화 창작을 독려하고, 창작자 및 관객 영화교육에도 직간접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이러한 지역 영화제를 개최하고 참여하는 지역 창작자 및 지역민들이 충분치 않은 지원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지원이 절박하다"라고 전했다.
서울의 집중된 문화의 지역 이전을 말하기에 앞서 이미 지역 안에서 스스로 기반을 다지고 의미를 축적해온 영화제들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축소된 영화제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내 숙박, 식음료, 교통 등 연관 소비를 유도하는 경제적 효과까지 포함해, 지역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유명 영화제가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서 자리 잡은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프랑스의 칸 국제영화제는 인구 약 7만 명 규모의 소도시 칸에서 시작해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전 세계 영화인과 언론,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해당 지역은 글로벌 영화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는 인구 1만 명 남짓한 로카르노 소도시에서 매년 수만 명의 영화인과 관객을 불러들이며 정체성과 규모를 동시에 갖춘 영화제로 성장했다.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 역시 유타주의 소도시 파크시티에서 출발해, 미국 독립영화의 산실로 기능하며 지역과 공생한 대표적 사례다. 영화제를 통해 지역이 만들어지고, 그 지역이 다시 영화제를 살리는 선순환은 이미 가능성을 증명했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정부가 말하는 지역문화 활성화는 예술단체를 물리적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진정한 분산은 이미 지역 안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문화 주체들이 존속 가능한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할 때 가능하다. 문화행정이 중앙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가까운 지역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공통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