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선정 지연에 해양 안보·산업 공백 우려
업체들 대립 속 방사청은 대선일정에 판단 유보
일본·프랑스 신형 함정 속도전...한국만 발 묶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이 1년 넘게 지연되면서 해군 전력화와 첨단 기술 적용, 수출 전략 수립이 모두 멈춰 섰다. 글로벌 해군력 증강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국산 함정 개발 사업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안보 대응과 산업 기회 모두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24일)전날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안’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안건을 보류했다. 방사청은 국방부와 사업 검토 경과를 재점검하고 국회 국방위원회를 대상으로 추가 설명을 진행한 뒤 안건을 재상정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 예정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도 KDDX 안건은 다뤄지지 않는다.
KDDX는 2030년까지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톤(t)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초대형 국책 함정사업이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맡아 2023년 말 완료됐다. 하지만 이후 사업 방식과 업체 간 이견으로 인해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착수가 1년 이상 미뤄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까지 맡는 것이 관례로, 사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수의계약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군 기밀 유출 논란을 언급하며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경쟁입찰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방사청은 수의계약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지만 일부 민간위원들의 반대가 이어지며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동개발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긴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KDDX 수주 업체는 한·미 동맹의 핵심인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비롯한 특수선 수주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어 국내 조선사들에게 가치가 큰 사업으로 평가된다. 두 회사가 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배경이기도 하다.
정치 일정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분과위원은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 업체와의 계약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안건 보류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사업자 선정은 차기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정치권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당 회의에서 “국방부가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추진하려 한다”며 “방산 알박기”라고 비판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미국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5일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을, 16일에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한 사실 역시 정치권 해석에 불을 지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연이 단순한 일정 차질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해군 전력 확보는 물론, 기술 내재화와 수출 전략 수립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주요국들이 신형 함정과 수출 경쟁에 속도를 내는 사이 시장 대응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일본은 모가미급에 이어 무인체계를 탑재한 7000톤급 다목적 스텔스 호위함 10척을 2030년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모가미급 호위함은 적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향상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프랑스 역시 FDI 호위함을 통해 스텔스 설계와 유무인 복합 운용성을 확보하며 수출 확대에 나선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갈등이 길어질수록 설계 적용과 수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며 “해군과 방사청이 사업자 구도를 조속히 정리하고 기술 역량을 결집해야 수출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