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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을 넘어선 여운, 필름포럼의 존재 방식 [공간을 기억하다]


입력 2025.04.25 14:00 수정 2025.04.25 14:3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작은영화관 탐방기㉑] 필름포럼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신앙의 세계관과 일상의 문화가 만나는 복합문화공간


필름포럼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영화들을 선별해 상영하는 예술영화전용관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 공간은 2개의 전용 상영관을 중심으로, 카페, 갤러리, 아카데미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관람을 넘어선 사유와 교류의 장을 지향한다.


운영 주체는 사랑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사단법인 필레마로, 이 단체는 필름포럼의 시설과 명칭을 인수해 201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며 필름포럼을 재개관했다. 이후 신앙에 기반한 세계관을 담되, 종교색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 가치와 예술성을 갖춘 영화 큐레이션을 지속해왔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예술영화전용관’으로 공식 지정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국내외 독립·예술영화, 인권·환경·공존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중심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은 부활절을 맞아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을 조명한 영화 '본회퍼 - 목사, 스파이, 암살자'가 상영 중으로 오전부터 관객들로 필름포럼이 가득찼다.


이후에는 '더폴: 디렉터스 컷', '브릿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예르미타시 예술의 힘',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브루탈리스트', '미키 17',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 두 개의 관에서 상영됐다.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필름포럼의 시작부터 운영에 함께해온 핵심 인물로 공간의 전반적인 기획부터 영화 큐레이션까지 주도한다.


"영화제를 일주일 정도 운영해 보니, 교회 내에서도 상설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화제의 방향성과 같은 맥락에서, 365일 상영 가능한 공간이 필요해, 필름포럼 극장을 인수 했습니다. 물론 기독교 영화들만 상영하는 건 아닙니다. 기독교 장르영화(성경 기반, 복음주의적 영화)도 상영하지만, 제작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꾸준한 상영이 어렵기도 하고요. 우리는 모든 일이 다 신의 섭리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 선함과 악함, 모든 것이 들어있죠. 그래서 많은 영화들이 여기에 다 해당된다고 볼 수 있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종교적이든 아니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영화는 필름포럼에서 상영이 가능합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왜 지금 다시 극장인가" 질문 던질 때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영상 소비가 아니라, 이야기 속 감정과 분위기를 오롯이 마주하는 일종의 '체험'이다. 혼자 보는 화면에서는 놓치기 쉬운 디테일과 정서적 파동은, 함께 숨을 고르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이처럼 극장이 제공하는 몰입감과 감정 공유의 힘이야말로 필름포럼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라고 설명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시네마틱한 체험입니다. 런닝타임이 10분이든 4시간이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그 경험이 중요합니다.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영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그런 관점의 영화들을 선별합니다."


필름포럼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넘어서, 관객의 문화적 삶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운을 나누고, 때론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나 사진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관람 이후의 ‘머무름’과 ‘교류’를 설계하는 방식은 필름포럼이 극장이자 커뮤니티 허브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필름포럼은 카페, 갤러리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두 달에 한 번씩 미술 큐레이터가 작품을 선별해 걸죠. 공간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되다 보니, 학생이나 일반 관객뿐 아니라 교회 기반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옵니다. 카페는 관객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일상적인 공간이 됐고요. 전시나 사진 프로그램도 열리고 있어요. 직접 사진 찍어주는 행사도 했고, 예술가들과 협업한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한국 영화산업은 2019년을 전후해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등으로 절정을 맞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객 수 급감과 함께 전체 산업 구조가 급격히 흔들렸다. 특히 OTT 플랫폼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은 일상적 소비층에서 특정 취향층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관객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이 지점에서 '왜 극장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낸다. 지금이야말로 극장이 시네마틱한 경험의 본질을 증명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코로나 직전까지 영화산업은 절정이었지만, 이후 OTT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극장 산업은 위축됐습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극장에서 볼래' 하는 관객들은 더 분명하기 두드러지죠. 특히 20~30대 중 일부는 취향 기반으로 오히려 더 선명하게 극장을 선택합니다. 결국 극장은 시네마틱한 경험을 위한 공간이라는 거죠. AI 기술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웬만한 콘텐츠는 다 집에서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극장인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면서도, 같은 공간에서 감정의 파동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 그건 극장에서만 가능한 일이에요. 지금이 위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극장이 다시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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