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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불씨를 지키는 사람들…유엔 CSW에서 만난 희망


입력 2025.04.25 14:58 수정 2025.04.25 14:59        박영민 기자 (parkym@dailian.co.kr)

ⓒIWPG 제공

올해 3월, 다시 찾은 뉴욕은 급작스럽게 추워진 한국에 비해 포근한 날씨로 우리 파견단을 맞이했다. 수년째 필자는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NGO인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소속으로 뉴욕을 방문하고 있다. 이유는 매년 3월 2주간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유엔 여성 총회’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회의는 성평등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전 세계 회원국과 시민사회, 학계 등 다양한 계층이 모여 그동안의 성과를 짚어보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 회의에서는 국제기구 및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하는 공식 회의와 정부, 국제기구 및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이드 이벤트, NGO들이 주도적으로 개최하는 NGO 포럼 등이 진행된다.


ⓒIWPG 제공

CSW는 유엔 회의 중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규모로는 유엔 내에서 진행되는 회의 중에서 가장 크고, 이 기간만 되면 이스트 45번가에 위치한 유엔 본부와 그 주변이 전통 복장을 입은 전 세계의 여성들로 그야말로 다국적 파티의 장처럼 변한다. 음식점들과 카페는 대화를 나누는 여성들로 떠들썩해지고, 평소에는 다소 보수적인 유엔 직원도 이 기간에는 마음을 열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을 맞이한다. 옆 테이블의 유엔 대사와 인사하며 합석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하는 여성 단체의 직원들과 길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수도 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해, 여성을 위한다’는 공통의 목표의식으로 일하는 전 세계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사명감과 목표 의식, 정보 교류 측면에서 매력적인 일이다.


IWPG는 올해 1개의 사이드 이벤트와 2개의 NGO 포럼을 개최하고 정부 대표부와 국제기구, 국제 NGO들과 여성을 공통분모로 한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참석했다. 2주 내내 계속되는 회의들에 참석해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듣고 연구하는 것도 목적 중 하나였다.


올해 CSW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예년과 달랐다. 매년 CSW 첫날은 항상 유엔 본부 정문에 긴 입장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번엔 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입장 후 내부도 떠들썩했던 예년의 분위기에 비하면 차분하다고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후인 2023년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분위기가 경직됐던 2024년에도 느끼지 못했던 변화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긴장된 대미 관계와 미국국제개발처(USAID) 예산 대폭 삭감에 따라 우리와 연락하던 많은 NGO가 급하게 다른 자금지원처를 찾다가 자금조달에 실패해 참석하지 못했다. 주로 상황이 어려운 글로벌 남반구가 불참했고, 이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대변하던 좋은 창구가 사라져 매우 안타까웠다.


ⓒIWPG 제공

우리는 올해 CSW 회기의 첫 사이드 이벤트를 아프리카연합(AU)과 개최했다. 아프리카연합은 유엔의 지역 내 사무국으로 55개 아프리카 국가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본부를, 이곳 뉴욕에 옵서버 자격의 상주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내가 소속된 IWPG는 지난해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제1회 아프리카연합 범아프리카 소녀 및 여성 교육회의’에 참가해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프리카연합 여성 및 여아 교육 국제센터(AU/CIEFFA)와 아프리카연합 여성젠더청소년국(AUC WGYD), 젠더는 우리의 의제(GIMAC) 네트워크, 유엔여성(UN Women)과 함께 주요 행사를 열었다. 올해 AU와 함께 연 사이드 이벤트의 주제는 ‘아프리카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배상, 젠더 정의, 평화 촉진: 2025년 이후의 의제’로 진행됐다. 이는 2025년이 아프리카연합에서 지정한 ‘배상의 해’였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이고 동시간대에 중요한 행사가 많이 열리는 가운데서도 100개의 좌석이 거의 꽉 찼다.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이름을 딴 이 자리에 아프리카 대륙 외 사람들은 동양인인 우리와 두세 명의 인도인을 제외하고 없었다. 다른 대륙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2주간의 일정은 릴레이 회의와 발제였다. CSW는 전 세계 정부 및 협력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에 우리 같은 국제 NGO에게는 중요한 미팅의 장이다. 특히 올해는 베이징 선언 및 북경행동강령 30주년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호 채택 25주년,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종료까지 5년을 남겨놓은 중요한 해로 많은 회의에서 그동안의 이행 결과와 부족한 점을 논의했다. 우리가 만난 유엔 대사들과 각국의 여성 정책 전문가들, 장관들은 특히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325 이행에 관심을 보였다.


1325호 결의안은 2000년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으로 ▲무력분쟁 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 근절 및 분쟁예방 ▲무력분쟁 해결 과정에서의 여성의 참여 확대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2024년 유엔 사무총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결의안이 통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여성의 피해는 크게 줄지 않고, 여성의 평화구축 과정 참여도 역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국가의 이행 의지가 있더라도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콘텐츠, 현장 경험을 보유한 시민사회 단체들의 참여와 데이터가 필요한데, 아직 1325 결의안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각국의 국가이행계획에 다양성과 효과성이 부족한 현실이다.


국제사회 목표에 미달하는 여러 수치는 CSW에 참여한 사람들을 실망스럽게 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필자가 발제자로 나섰던 NGO 포럼에서 시카고 유엔협회 회장직을 맡았던 사회자는 올해 CSW의 흐름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앞으로 5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느냐고 물었다. 2030년 SDGs 종료까지 5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국제사회가 달성하기로 한 수치에 한참 미달하고, 국제 정세는 혼란스러운 현재 상황을 반영한 질문이었다.


여성과 평화에 대한 논의가 국제개발의 관점으로 집중되면서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데이터’로 나타난 결과만을 이야기했다. 아직 데이터로 취합되지 않는 대부분의 진보는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지역사회 커뮤니티에서 뛰고 있는 현장 활동가로서 체감하고 있는 것은 정치는 지도자에 따라 방향이 오락가락하더라도, 현장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평화사업을 하는 우리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정말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느냐”는 의심 어린 질문을 하는 유엔 고위직도 있었고, 중동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던 친구가 살해당했을지라도 그 뜻을 이어 구호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이스라엘계 미국인도 만났다.


분명한 것은 역사에서 이러한 혼란 속에도 전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세상의 많은 문제점이 해결돼 왔다는 것이다. 내년이 올해보다 더 절망적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CSW를 다시 찾을 내년이 되면 우리 모두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 전진할 것이다. 우리가 찾아낼 새로운 방법과 그로 인해 이뤄질 혁신과 진보가 기다려진다.


[도움말:최동은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본부 국제협력부장]

박영민 기자 (parky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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