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 후보들 앞다퉈 ‘행정수도 이전’ 공약
반세기 공염불 그친 약속에도 집값 다시 ‘들썩’
부동산 시장 침체 심각…선심성 정책 지양해야
6월 조기 대선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명 ‘세종 천도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주요 대권 후보들이 앞다퉈 대통령실과 국회 등 주요 기관의 세종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쓰다가 청와대를 거쳐 세종으로 단계적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같은 당 김경수·김동연 후보도 대통령실의 세종 이전을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대통령 관저를 세종시로 이전하겠단 공약을 내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여의도 국회시대를 끝내고 ‘국회 세종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잇따른 발언에 “또?”라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 행정수도 이전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이슈가 아니어서다.
앞서 지난 1971년 제 7대 대통령선거에 공약으로 처음 언급된 이후 반세기 동안 정치적 빅 이벤트의 단골 공약(公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 이전 대선에서도 나왔지만 공염불에 그친 대표적인 공약(空約)이기도 했다.
인구과밀 해소와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갖가지 이유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추진되다 엎어지길 반복했다. 지난 2004년 헌재가 헌법 개정 없이 수도를 이전하는 건 위헌이라 판단한 이후에는 사실상 ‘정치적 발언’에 그친다는 인식이 커졌다.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감이 작용해서일까. 정치인들의 발언에 세종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 25일 기준 3월의 세종시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781건으로 올 1월(299건) 대비 161.2%나 급등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거래량이 386건인 것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늘었다.
집주인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너도나도 몸값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을 선점하려는 매수세가 몰리면서 갭투자 움직임도 활발하다는 전언이다. 쌓여있던 매물은 빠르게 소진되고 아파트값 호가가 나날이 오르며 신고가를 기록했단 뉴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치 지난 2020년 총선 과정에서 ‘세종 천도론’으로 집값이 치솟았던 분위기가 재연되는 듯하다. 당시 세종시 아파트 값은 이후 1년간 44.93% 치솟으며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시장은 빠르게 식어갔고 장기간 하락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이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지방 소멸 위기가 점점 심화되는 만큼 ‘국가균형발전’은 여느 때보다 중요한 국정 과제로 떠올랐지만 단순히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것 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도 미지수다.
침체돼 있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케케묵은 ‘행정수도 이전’ 카드보다 진정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선심성 발언에 마음이 멍드는 건 비단 세종시민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전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