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의 천만 관객 돌파 후 한국 콘텐츠 시장에는 한동안 '좀비물' 열풍이 불었다. 드라마부터 영화, 예능까지 좀비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들이 줄줄이 기획됐고, 이는 '케이-좀비'(K-좀비)라는 고유 장르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좀비물은 그 위력을 잃고 점차 흥행 동력을 상실했다. '스위트홈' 시즌2와 시즌3는 전작의 인기를 잇지 못하고 혹평 속에 마무리됐으며, '반도', '지금 우리 학교는', '뉴토피아' 등 좀비를 테마로 한 콘텐츠들이 연달아 기대 이하의 성과를 기록하며 하향세를 확실히 드러냈다.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의 퇴색이다. '부산행'이 국내 최초 케이-좀비 블록버스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킹덤'은 시대극이라는 새로운 배경을 입히며 '좀비 서사'에 신선함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차별화된 설정 없이 좀비물의 전형을 반복하는 콘텐츠가 많아졌고, 시청자는 익숙한 아이템과 뻔한 전개를 두고 지루함을 토로했다. 아무리 뛰어난 CG나 스케일로 무장하더라도, 이야기의 구조와 감정의 설득력이 떨어지면 금세 식상함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CG와 특수분장에 대한 피로도도 문제다. 한때는 '진짜 같다'며 놀라움을 자아냈던 좀비들의 기괴한 움직임이나 대규모 몰살 장면도 이제는 기술적 완성도 보다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식된다. 특히 시즌제 구조로 이어지는 콘텐츠일수록 시각적 신선함의 유지가 어려워졌고, 드라마와 영화 모두 루틴한 전개로 흐르며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스위트홈' 시즌 2와 3이 비판받은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시즌이 전개되며 새로운 크리처가 나타났지만 허술한 CG와 산만한 설정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플랫폼의 변화도 흥행 구도에 영향을 줬다. '킹덤'이나 '스위트홈'의 시즌 1이 공개되던 당시에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소비의 중심에 있었고, 한 번의 대작 공개가 전 세계 트렌드를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즈니 플러스, 쿠팡플레이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시청자층이 분산되면서 하나의 콘텐츠에 집중된 화제성이 떨어졌다. 또 기대치가 높은 만큼 기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완성도나 몰입도 면에서 부족한 작품은 금세 외면을 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늘어지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 허술한 세계관 설정도 케이 좀비물이 '하락세'라는 평가를 받는 데 일조했다. 긴장감을 이어가야 할 극 중에서 인물 간 똑같은 갈등이 반복되었고 극 전개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순간이 누적되며 몰입이 깨졌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대표적 사례다.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을 활용해 긴장감을 유도했지만 무능력한 캐릭터와 현실감 없는 서사 등으로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시청자들이 좀비물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좀비는 인기 아이돌의 자체 콘텐츠에 꾸준히 등장하는 클래식한 소재이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계관 속 출연진들의 미션 수행기를 다룬 예능 '좀비버스' 또한 OTT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를 차지하며 후속 시즌이 제작되기도 했다. 소재 자체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케이-좀비물의 재부흥을 위해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좀비'는 외피일 뿐이다. 단순히 위협적인 존재로서 좀비를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 심리, 공동체의 붕괴, 새로운 질서의 형성과 같은 복합적인 주제를 녹여내는 서사가 절실하다. '킹덤'이 조선 시대의 권력 구조를 배경으로 좀비를 재해석했듯, 또 한 번의 장르 재창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결국 '재미'가 문제"라며 "초반에는 한국형 좀비 콘텐츠가 신선함을 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식상함과 맞서게 됐다.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