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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 국민이 지켜낸 국민가수


입력 2025.04.26 07:07 수정 2025.04.26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 기자간담회가 지난 3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렸다. 가수 이미자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흔히 이미자를 두고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한다. 엘레지(elegy, élégie)는 일반적으로 슬픈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하면 슬픈 노래의 1인자란 의미인데, 과거 우리 전통 음악이 일반적으로 슬픈 노래, 즉 한의 정서를 담았었기 때문에 슬픈 노래의 1인자는 곧 전통가요 1인자란 뜻이다. 개발시대엔 전통가요가 가요계 주류였기 때문에 전통가요 1인자는 한 마디로 개발시대 국민가수였다는 얘기다.


1959년 18살 때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다. 이때까진 전통가요나 엘레지의 느낌이 아니었는데 1964년에 만삭의 몸으로 녹음한 ‘동백아가씨’가 초대박을 치면서 일약 전통가요 슬픈 노래의 1인자가 되었다.


‘동백아가씨’는 우리나라에서 전축 있는 집에선 다 판을 샀다고 할 정도로 범국민적 인기를 누렸고 박정희 대통령도 이 노래의 팬이라고 했었다. 당시 패티김, 최희준 등의 팝스타일 노래들이 인기를 끌며 트로트가 위축되는 흐름이었는데 이미자의 등장으로 60년대 중반에 트로트 대부흥이 일어났다.


그게 소위 엘리트들 눈엔 아주 못마땅했던 것 같다. 과거엔 트로트를 저질퇴폐, 주점에서 젓가락 장단이나 맞추는 ‘뽕짝’이라는 식으로 폄하했었다. 심지어 없애버려야 할 왜색가요라는 편견까지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국민가요 ‘동백아가씨’가 갑자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왜색, 비탄조 등이 이유였다고 한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유달산아 말해다오’ 등도 금지됐다. ‘섬마을 선생님’은 일본 곡을 표절했다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우리 사회 주류로부터 탄압과 무시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이미자를 지켰다. 금지됐어도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국민가요였다. 파월 장병들 사이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밖에 한국인의 애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이미자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녀가 베트남에 파월 장병 위문 공연을 갔을 때 현장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데뷔 30주년인 1989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려 하자 대관 거부를 당했다. 전통가요를 저질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대중음악 자체를 낮추어 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공연을 성사시켰는데 그게 한국 대중가수 최초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이었다.


이 공연엔 우리나라 정재계 고위인사들이 집결해 이미자가 국민가수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국민적인 성원 덕에 트로트에 대한 평가, 이미자에 대한 평가도 점점 더 호전돼 결국 95년 화관문화훈장부터 2009년 은관문화훈장, 그리고 2023년엔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미자는 “서구풍 노래를 부르면 상류층이고 우리 노래(전통가요)를 부르면 하류층이라는 소외감을 느끼며 지냈다”며 “전 최희준, 패티김 등이 부르던 스탠더드 팝에 비해 (제 노래는) 모임에서 부르기 부끄러운 노래로 여겨지던 시대를 살았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전통가요의 기품을 지키려 노력했고, 항상 촌스러운 사람으로 불렸음에도 결국 여기까지 인정을 받았지요.”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그렇게 인정받으며 이미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단골로 공연하는 대중가수로 우뚝 섰다. 40주년, 50주년, 55주년, 60주년 공연을 모두 세종문화회관에서 치른 것이다. 그리고 올 4월 26~27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녀의 마지막 공연이 열린다. 그녀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새로운 공연이나 레코드 취입은 안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은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양새다.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며 전통가요에 대한 편견을 깼던 그녀이기에, 바로 그 장소에서 마지막 공연을 여는 것이 더욱 뜻 깊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엔 세종문화회관 측에서 이미자에게 공연을 먼저 요청했다는 점이다.


1989년엔 이미자 측에서 대관 거부를 당해가며 공연을 요청했었지만 이젠 세종문화회관이 먼저 모시는 위상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이미자, 전통가요, 더 나아가 대중음악 자체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이미자는 이번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전통가요의 맥을 후배들에게 넘긴다. 조항조와 주현미, 그리고 ‘미스트롯3’의 우승자 정서주, ‘미스터트롯3’의 우승자 김용빈이 후배 대표로 선정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미자는 “이런 특별한 공간에서 우리 대중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해온 전통가요를 대물림하는 게 축복받은 일이자 운명적이라 여겼다”라고 말했다. 개발시대에 우리 국민을 위로해준 이미자의 노래처럼 젊은 후배들의 노래도 앞으로 우리 국민과 함께 울고 웃게 될까? 그럴 수 있다면 국민이 계속 그 노래들을 지킬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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