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왕의 얼굴'부터 청량한 청춘물 '발칙하게 고고'까지.
다양한 재미 선사해 온 윤수정 작가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2012년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 소녀탐정 박해솔’로 데뷔한 윤수정 작가는 이후 ‘천명 :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와 ‘왕의 얼굴’ 공동집필을 맡아 묵직한 사극의 재미를 선사했었다. 이 가운데, 지난 2015년 ‘발칙하게 고고’를 통해선 청소년 드라마의 유쾌함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장르 스펙트럼도 입증했다.
지금은 유쾌한 판타지와 무게감 있는 사극의 재미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영매의 운명을 거부하는 무녀 여리(김지연 분)와 여리의 첫사랑 윤갑의 몸에 갇힌 이무기 강철이(육성재 분)의 이야기 담는 SBS 금토드라마 ‘귀궁’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 3회 만에 9%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 묵직한 사극과 유쾌한 로맨스·판타지까지, 넓은 장르 스펙트럼
최민기 작가와 공동집필한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는 인종독살음모에 휘말려 도망자가 된 내의원 의관 최원(이동욱 분)의 불치병 딸을 살리기 위한 사투를 그린 작품으로, 도망자가 된 조선시대 의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었다.
인종이 문정왕후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야사 속 주장을 바탕으로, 의원 최원이 누명을 쓰게 되면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는 과정, 아픈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까지. 풍성한 서사로 흥미를 유발했다. 세자 독살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이 최원과 추적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어우러져, 역사가 스포인 사극임에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긴장감이 생겨났다.
여기에 최원의 부성애는 물론, 당찬 매력의 의녀 홍다인(송지효 분)의 시원한 활약까지. 다채로운 서사들이 완성도 높게 이어져 여느 사극과는 ‘다른’ 재미를 만들어냈었다.
서자 출신으로 세자에 올라 16년간 폐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광해가 관상을 무기 삼아 운명을 극복하고,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 ‘광해’ 또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 삼아 장르물의 재미를 덧입혀 만족감을 배가했다.
목숨을 위협받으면서도 끝내 목표한 바를 이뤄낸 광해(서인국 분)의 고군분투도 흥미로웠지만, 광해가 김가희(조윤희 분)를 두고 아버지 선조(이성재 분)과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는 비극적 서사가 주는 애틋함도 있었다.
이렇듯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지도자는 자신이 아닌 ‘백성의 얼굴’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뚝심 있게 전달하는 등 사극의 무게감도 놓치지 않은 것이 이 드라마의 강점이었다.
‘발칙하게 고고’를 통해선 분위기를 조금 더 유쾌하게 전환했다. 고등학교 내 두 동아리의 통폐합을 소재로 10대 청소년들의 풋풋하면서도 발랄한 에너지를 담아낸 동시에,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한 학교의 현실을 짚었다.
주인공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도 물론 있었지만, ‘치어리딩’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통해 경쟁을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맞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뭉클하게 그려졌다.
대학교 입학을 위한 스펙 쌓기의 일환이었던 치어리딩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등 시작은 부조리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치어리딩부를 지켜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느 청소년 드라마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었다.
‘귀궁’은 ‘발칙하게 고고’의 유쾌함과 앞선 퓨전 사극들에서 보여준 무게감을 함께 갖춘 작품이다. 팔척귀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욕망들이 드러남과 동시에 여리와 윤갑의 몸에 갇힌 강철의 꼬인 관계를 지켜보는 재미도 함께 유발되고 있는 것. ‘육신 쟁탈 로맨스’라는 주인공들의 색다른 사랑 이야기에, 오컬트의 섬뜩함이 어떻게 어우러질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 되겠지만, 여러 장르를 섭렵해 온 윤 작가가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풀어나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