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진하고, 달고, 향기롭다. 어딘가 곪아 있는데, 그 향에 이끌려 눈을 뗄 수 없다. 이혜영이 그려낸 조각이 그랬다.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을 처리하는 신성방역에서 40년 간 활동 중인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그를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담은 액션 드라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22분의 러닝타임 속에서 조각의 '상실'이 숨가쁘게 그려진다. 그가 겪어온 시련과 각성은 노년기를 맞이한 60대 여성의 고뇌와 맞물려 정교하게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 대사는 연결되며 서사는 견고하게 쌓여간다. '보는 맛'까지 살린 민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이혜영은 어떤가. 존재만으로도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그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새 장르를 구축해내고야 말았다. 조각이 지닌 노련함과 불안, 후회, 체념 등을 눈빛 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했으며 대사마다 실어나르는 묵직한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몰입을 이끌어냈다.
액션 연기 또한 놀랍다. 날렵한 비녀로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하는가 하면, 칼을 던지고 총을 쏘며 복도 액션까지 선보인다. 여기에 와이어를 매달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전설'로 자리잡은 60대 킬러의 정체성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모습이다.
김성철이 빚어낸 투우 역시 주목할 만하다. 조각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투우는 전성기를 맞이한 젊은 남성이 보일 법한 생동력 넘치는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한다. 투우의 뜨거운 감정선이 얼음장 같은 조각과 충돌하며 일으키는 시너지는 극의 클라이막스를 이끌며 쾌감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연우진, 김무열, 신시아, 故 박지아 등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매끄러운 전개를 돕는다. 특히 류 역을 맡은 김무열의 화려한 액션과 절절한 감정선이 돋보인다.
원작의 장점을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액션 뿐 아니라 메시지 면에서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김성철은 "누가 이런 걸 사 먹냐"며 파과를 밟아버리지만, 이혜영은 둔탁한 칼을 두고 "아직 쓸만한데?"라고 말한다. 각자의 상실에 대처하는 캐릭터의 간극 또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