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독특한 런웨이 무대, 불완전한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위태롭게 서로의 주변을 맴돌던 두 사람이 마침내 조심스러운 ‘랑데부’를 시도한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올려진 연극 ‘랑데부’는 그 제목만큼이나 만남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극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태섭은 로켓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자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 묶여, 마치 고장난 트레드밀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반복적인 일상과 연구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논리와 이성, 정해진 법칙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만큼이나 감정의 교류와 인간적인 연결에 대해서는 서툴고 방어적이다.
이러한 태섭의 닫힌 세계에 예기치 않게 침범하는 인물이 바로 지희(김하리 분)다. 지희는 태섭과 정반대로, 춤이라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이다. 그녀의 존재는 태섭의 정적인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동적인 에너지 그 자체다.
이 극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마주치는 공간, 혹은 그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오브제가 바로 ‘트레드밀’이다. 런웨이 형태의 무대는 두 인물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이 기계는 각자의 고독한 싸움,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 혹은 서로 다른 속도로 달려가는 두 사람의 평행선 같은 관계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리듬을 방해하고 어긋나지만, 점차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미세하게 속도를 맞춰가는 과정은 이질적인 두 세계가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랑데부’의 핵심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작품에선 배우들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100분간 중간 퇴장 없이 단 두 명의 배우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각자의 캐릭터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방백으로 풀어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또 배우가 닿을 듯 말 듯 다가갔다 멀어지며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특히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 배우 최민호는 오차 없이 깔끔한 외모와 냉철해 보이는 표정 뒤에 숨겨진 깊은 상처와 외로움,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두려움을 절제된 연기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공감 가고, 서툴기에 응원하고 싶어지는, 상처 입은 영혼의 조심스러운 성장기를 보여준 것이 최민호만의 ‘태섭’의 매력이다. 작품 곳곳에 적절히 배치된 유머 포인트도 재치 있게 살리면서 완급 조절에도 유연한 모습이다.
최민호·김하리 외에도 박성웅·이수경, 박건형·범도하가 고정된 세 페어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