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TC본더 다변화 검토"
한미반도체, 가격 인상 등 조치로 대응
양사 8년 동맹,TC본더 다변화로 균열
전문가 "서로가 서로 놓을 수 없을 것"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필수 제조 장비를 두고 빚어진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갈등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밀월을 유지해 온 양측의 관계에 금이 간 가운데, 업체 간 갈등 국면이 장기화할지 관심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HBM 수요에 맞춰 장비 다변화를 검토 중이다.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양측의 갈등은 SK하이닉스가 HBM 제조에 필수인 TC본더(열압착장비)의 공급사 다변화를 고려하면서부터 불거졌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과 10대 안팎(420억원 규모)의 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하이닉스는 그간 시장 주류인 'HBM3E 12단' 제조 공정에 한미반도체 장비를 전량 사용해왔으나, 최근에는 싱가포르 ASMPT, 국내 한화세미텍 등과 협력하며 공급망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발주한 TC본더 장비 가격이 한미반도체보다 높다는 점에서 한미반도체 측의 감정이 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타 고객사보다 30%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TC본더를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구축하고 있었던 독점 공급 지위가 깨지는 데 더해 수익성 측면에서도 타사 대비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한미반도체는 8년간 동결해온 TC본더 장비 가격을 약 25% 인상하고, 무상으로 제공하던 CS(유지보수) 서비스를 유상으로 전환하겠다고 SK하이닉스에 통보했다.
SK하이닉스는 공급망 안정화와 HBM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장비 다변화를 준비해왔다. 핵심 장비를 한 업체로부터만 공급받는 체제는 품질 및 생산능력 저하 등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HBM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관련 장비 공급사의 이원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최선단 HBM 생산 방식인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을 채택하기 위해 기술 전환에 나서며 이같은 장비 교체를 고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 한미반도체가 공급 중인 12단용 TC본더는 12개의 D램 칩에 열과 압력을 가해 적층한다. 하지만 16단 이상의 고단 적층부터는 기존 방식으로는 수율 확보가 어려워 기술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 유리한 공정이 '하이브리드 본딩'이다.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은 쌓아 올린 칩 사이의 연결 장치를 걷어내고 D램만 포개는 방식으로 12단 이상 고적층 제품의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데이터 전송 속도와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이미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 구현을 위해 장비 자회사 세메스와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으로 차세대 HBM4에서 SK하이닉스와 격차를 좁힌다는 계획이다. HBM 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에선 장비 다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가 2017년부터 TC본더를 공동 개발하며 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결국 갈등을 봉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양사는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며 물밑에서 이견을 좁히기 위한 대화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양사는 "(장비 공급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